故백남준 탄생 90주년 특별전 1961년 ‘20개의 방을 위한 교향곡’ 예술가 7개 팀이 해석해 시각화 관객들도 방 넘나들며 참여 가능
‘완벽한 최후의 1초-교향곡 2번’ 전시의 1번 방. 예술가들은 백남준의 지시문 ‘물이 흐른다/낡은 괘종시계가 시끄럽게 울린다/테이프 녹음기’를 각자 해석해 시각화하고 소리도 들리게 했다. 백남준아트센터 제공
‘귀로 듣는 음악을 전시한다.’
백남준(1932∼2006)이 20대에 꿈꿨던 목표다. 1961년, 백남준은 ‘20개의 방을 위한 교향곡’이란 이름의 악보를 만들었다. 오선지에 음계나 음표를 적어놓는 여느 악보들과는 다르다. 사각형 모양의 선 위로 ‘X선 촬영실에서 사용하는 것 같은 붉은 전등’ ‘신비스러운 향’ ‘재잘거리는 아기 소리’ 등 음표의 기능을 대신하는 지시문만 빼곡히 적혀 있다. ‘듣는 것’에 한했던 음악에 대한 통념을 깬 백남준의 실험적 시도였다.
살아생전 연주된 적 없던 이 교향곡이 61년이 지난 지난달 24일 국내 처음 시연됐다. 경기 용인시 백남준아트센터가 올해 탄생 90주년을 맞은 백남준을 기리며 준비한 특별전에서다. 전시 ‘완벽한 최후의 1초―교향곡 2번’은 사운드, 설치, 영상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 7개 팀이 백남준의 악보를 해석해 시각화했다.
백남준은 살아있는 생명체를 언급하기도 했다. 3번 악보 ‘우리 안에 살아 있는 닭/조명 100W/부드럽고 신비스러운 향’이 대표적이다. 이는 사람 외의 생명체와 사물이 내는 소리 또한 음악이 될 수 있다는 백남준의 생각을 잘 보여준다.
전시의 특징은 의도된 떠들썩함이다. 악보별로 방의 경계는 존재하지만, 옆방의 소음을 완벽히 차단하는 벽체가 없어 많은 소리가 한데 뒤섞여 있다. 한누리 백남준아트센터 학예연구사는 “교향곡은 관객에게 한 방향의 음악을 듣게 하는 데 비해 백남준의 교향곡은 악장이라 볼 수 있는 사각형이 순서를 가늠할 수 없게 펼쳐져 있다. 시간순이 아니라 동시에 진행되는 백남준의 음악을 나타낸 것”이라고 말했다.
다방향성(多方向性)으로 정의되는 백남준의 음악세계는 관객 참여가 중요하다. 백남준은 사각형 위에 구체적인 모양을 그리지 않았다. 예술가들은 텍스트만을 보고 각자 다른 형태를 상상해 악보를 완성시킨다. 작가들만이 아니다. 각 방 중간중간에는 피아노, 축음기 등 관객이 참여할 수 있는 포인트가 있다. 백남준이 1962년에 쓴 ‘음악의 전시에 관하여’라는 글에서 “나는 청중이 자유롭게 행동하고 즐기기를 바란다”고 밝힌 것처럼 그의 악보를 넘기는 주체, 즉 방을 넘나드는 관객이 누구냐에 따라 음악이 달라진다. 6월 19일까지. 무료.
용인=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