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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브르박물관도 반한 ‘한지의 매력’, 그 뒤엔 한인 형제

입력 | 2022-04-25 13:49:00


“아부다비 왕실로부터 ‘대한민국을 가장 위대하게 표현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어요. 한지의 우수성을 세계무대에 제대로 알릴 기회잖아요. 놓칠 수 없었죠.”

프랑스에서 문화재 복원전문가로 활동하는 김민중 씨(35)에게 2020년 봄 한 통의 e메일이 닿았다.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이 주최하고 아랍에미리트 루브르 아부다비에서 열리는 ‘종이의 역사’ 전시에서 한국의 전통 종이 한지(韓紙)를 소개하는 전시관을 기획하겠다는 김 씨의 제안이 받아들여진 것.

“한지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고 싶다”는 김 씨의 바람대로 이달 20일부터 7월 23일까지 루브르 아부다비에서 열리는 ‘종이의 역사’ 특별전에는 한지를 소개하는 전시 공간이 마련됐다. 전시실에는 아이의 탄생을 알리는 금줄부터 망자에게 입히는 종이 수의 등 한국인의 생과 사 모든 순간에 함께 하는 한지를 선보였다. 전시실 한편에는 전북 전주시에서 직접 운송한 한옥이 설치됐다. 장판과 창호 등 건축자재로 사용될 만큼 오래도록 지속가능한 한지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서다. 24일 오후 동아일보와의 전화인터뷰에서 김 씨는 “종이와 함께 태어나 쓰고, 입고, 메고, 신고 죽는 한국인의 삶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웃었다.

“전시 개막 전 한지 전시실에 방문했던 아랍에미리트의 문화부 장관이 한지로 만든 옷과 신발 등 공예품 앞에서 10분 동안 발걸음을 떼지 못했어요. 종이를 꼬아 옷을 지어 입었을 정도로 한지에는 끈질긴 힘이 있죠. 한지가 지닌 힘을 세계에 알릴 수 있어 뿌듯합니다.”




루브르박물관이 전통 한지에 관심을 갖게 된 건 2017년. 파리1대학에서 미술품보존복원학 석사 과정을 밟으며 문화재 복원전문가로 활동하던 김 씨가 전통 한지를 이용해 신성 로마 제국 황제인 막시밀리안 2세(1527~1576)가 사용하던 책상의 부서진 손잡이를 복원하면서부터다. 전통 한지를 이용해 외국의 문화재를 보존한 세계 최초의 사례였다. 김 씨는 “그동안 루브르박물관을 포함해 세계 각국의 유명 박물관에서는 일본의 화지(和紙)를 사용해 문화재를 복원해왔다”며 “그런데 2017년 이후부터 화지보다 접착력, 강도 등이 뛰어난 한지를 눈여겨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김 씨가 외국 문화재 보존업계에서 한지의 잠재력을 입증하며 물꼬를 튼 것.

이후 김 씨는 친형 김성중 씨(40)와 함께 사단법인 ‘미래에서 온 종이협회’를 설립해 외국 박물관에 문화재 복원용 전통 한지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해 6월 루브르박물관에서 열린 ‘부르봉가의 역사’ 전시에서 선보인 프랑스 풍속화가 샤를 르모니에의 작품 등 18점은 모두 김 씨 형제가 설립한 협회에서 제공한 전통 한지로 복원됐다. 현재 프랑스 자연사박물관에서 객원연구원으로 박사논문을 쓰고 있는 그는 올 11월 루브르박물관과 협업해 한지 관련 학술대회를 기획하고 있다. 김 씨는 “아직까지 일본 화지가 외국 문화재 복원시장의 99.9%를 차지하고 있다”며 “한지의 우수성을 알려 한지 점유율을 1%씩이라도 점차 확대해나가는 것이 목표”라며 웃었다.

“언젠가 라파엘로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예술작품을 한지로 복원하는 것이 제 꿈입니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