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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이진영]프랑스 ‘비호감 대선’

입력 | 2022-04-26 03:00:00


마크롱이 이긴 게 아니라 르펜이 진 선거다. 이번 프랑스 대선에서 중도 성향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45)을 찍은 사람들 중 상당수가 “마크롱이 좋아서가 아니라 마린 르펜 국민연합 대표가 싫어서”라고 한다. 마크롱도 당선 연설에서 “나를 지지해서가 아니라 극우를 막기 위해 투표한 것 알고 있다”고 했다. 프랑스는 대통령의 연임을 축하하기보다 “극우를 막아냈다”는 데 안도하는 분위기다.

▷이번 대선은 ‘싫은 후보’와 ‘두려운 후보’가 경쟁하는 비호감 선거였다. 마크롱은 ‘싫은 후보’다. 2017년 정치 신인으로 최연소 대통령에 당선돼 파란을 일으켰는데 지금은 ‘젊은 꼰대’ 이미지가 강하다. 노동과 연금 개혁을 추진하고 감세 정책으로 기업을 유치하는 과정에서 성과가 있었지만 ‘부자들만의 대통령’이라는 반대 여론도 컸다. 유류세 인상에 반대하는 ‘노란조끼’ 시위대를 강경 진압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의사 부부 아들로 태어나 국립행정학교(ENA)를 졸업한 데다 ‘노동개혁 반대자는 게으름뱅이’라는 실언들이 반복되면서 오만한 엘리트 이미지가 굳어졌다.

▷극우파 르펜은 ‘두려운 후보’다. 대표 공약이 불법 이주민 강제 추방법 제정을 위한 국민투표, 공공장소에서 히잡 착용 금지, 일자리 주거 복지 정책에서 이주민 차별하기다. 생활 물가 안정과 사회보장 확대 등 친서민 공약으로 농촌과 블루칼라 민심도 잡았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푸틴을 존경한다”는 과거 발언이 알려지고 소속 정당이 러시아 군수업체에서 160억 원을 빌린 사실이 드러나 타격을 입었다.

▷프랑스는 결선투표제를 두고 있어 극단적 인물이 당선되기 어렵다. 1차 투표에선 마크롱과 르펜 간 표차가 미미했지만 결선에선 58.5% 대 41.5%로 17%포인트 벌어졌다. 르펜의 아버지 장마리 르펜도 딸보다 더한 인종주의자였는데 20년 전 결선에서 자크 시라크에 패배했다. 하지만 프랑스인들은 “극우를 막기 위해 투표하는 것도 이젠 지겹다”고 한다. 이번 선거에서 마크롱과 르펜의 표 차는 5년 전(32.2%포인트)에 비하면 반 토막이 났다.

▷르펜이 얻은 41.5%는 프랑스 역사상 극우 후보가 기록한 최고 득표율이다. 그만큼 프랑스가 우경화하고 있다. 프랑스는 서유럽 국가 중 무슬림 인구 비율이 8.8%로 가장 높다. 30년 후엔 20%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퓨리서치센터). 극우파가 진화하면서 극단적이라는 이미지를 벗고 서민층을 파고드는 점도 우려된다. 사회 분열을 치유하고 정치 불신을 해소하는 대책 없이는 ‘싫은 후보’와 ‘두려운 후보’ 중 덜 나쁜 쪽을 고르는 선거는 반복될 것이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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