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분상제’ 피하려다 …둔촌주공 재건축, 공사비 증가 갈등에 올스톱[인사이드&인사이트]

입력 | 2022-04-26 03:00:00

서울 ‘둔촌주공’ 재건축 표류기
분양가 수긍 못한 조합원들, 내부 갈등에 분양시기 늦어져
시공사 자금 회수에도 차질…조합, 年이자 부담만 800억
시공사는 지체보상금 걸림돌



25일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 재건축 공사가 전격 중단된 지 열흘이 됐다. 사진은 시공사업단이 공사를 중단하며 아파트 외벽에 유치권 행사를 알리는 현수막을 걸어놓은 모습. 뉴스1

정순구 산업2부 기자


《‘무단출입, 기물파손, 게시물 훼손 시 관련법에 의거 처벌될 수 있습니다.’

25일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 재건축 현장. 건설사(시공사업단)들이 유치권 행사를 위해 내건 현수막이 공사장 곳곳에 걸려 있었다. 아파트들이 높게는 20층까지 지어져 있는 등 절반 이상 공사가 진행됐지만, 이날 현장에는 가동을 멈춘 크레인만 우뚝 서 있을 뿐이었다. 포클레인과 덤프트럭 등은 일제히 철수했고 공사장은 적막감이 흘렀다.

국내에서 역대 최대 재건축 사업으로 불리는 둔촌주공 공사가 이달 15일 중단된 후 10일이 흘렀다. 이곳은 1만2032채 규모의 초대형 단지로 조합원 물량을 뺀 일반 분양 물량만 4786채나 나온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다음 달 분양에 들어가야 하지만, 분양가 산정을 둘러싼 갈등에 공사비 증액 문제까지 겹치면서 기약 없이 분양이 늦춰지고 있다.》




○ 공사비 5500억 원 증액 둘러싼 조합-시공사 대립

공사 중단의 표면적 이유는 조합과 시공사업단 간 갈등이다. 현 조합 집행부가 전(前) 조합이 시공사업단과 맺은 공사비 증액 계약을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하며 시작됐다.

2020년 6월 둔촌주공 전 조합과 시공사업단(현대건설 HDC현대산업개발 대우건설 롯데건설)은 공사비를 2조6708억 원에서 3조2294억 원으로 늘리는 계약을 맺었다.

현 조합은 이 계약이 한국부동산원의 공사비 감정 결과를 반영하지 않았고 조합 총회를 거치지도 않았다며 적법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실제 공사비 증액 계약을 체결하고 2개월 뒤 조합 집행부는 전원 해임됐고, 지난해 5월 새로운 조합이 출범했다.

반면 시공사업단은 당시 조합과 정당한 절차를 거쳐 계약했고 관할인 강동구 인가까지 받아 문제가 없다고 맞서고 있다. 분양이 늦어지며 철거 공사까지 포함해 약 1조7000억 원의 공사비를 한 푼도 못 받았다는 입장이다.

양측 의견이 좁혀지지 않자 시공사업단은 지난달 초 현 조합에 공사비 증액 계약을 법적으로 유효한 계약으로 인정하지 않을 경우 공사를 중단하겠다고 통보했다. 현 조합은 지난달 21일 시공사업단을 상대로 서울동부지법에 공사비 증액과 관련한 계약변경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고, 시공사업단은 이달 15일 공사 중단에 이르게 됐다.


○ 분양가상한제부터 꼬여버린 매듭

둔촌주공이 공사 중단의 초유의 사태에 이르게 된 근본 원인을 따져보면 분양가 산정을 둘러싼 갈등으로 일반 분양을 제때 못 한 영향이 크다. 조합원들은 정부의 고(高)분양가 규제로 원하는 분양가가 나오지 않자 당시 조합 집행부를 해임하는 ‘초강수’를 두면서까지 일반분양 시기를 늦췄다. 그만큼 시공사업단의 자금 회수가 미뤄졌고 양측 갈등의 골이 깊어지게 됐다.

실제 둔촌주공 조합은 2019년 12월 조합원 총회에서 3.3m²당 분양가(일반 분양)를 3550만 원으로 책정했다. 하지만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제동을 걸며 분양가를 2978만 원으로 제시했다. 조합이 내건 분양가보다 16.1% 낮춘 것이다. 이 과정에서 HUG의 분양가를 받아들여 빨리 사업을 진행시키려는 조합원들과 후분양을 선택해 일반분양가를 높이려는 조합원들 사이의 갈등이 커졌다.

HUG가 제시한 분양가가 낮다며 반대하던 조합원들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 다른 조합원들의 지지를 얻으며 기존 조합 집행부의 해임까지 이끌었다. 새 조합 집행부는 택지비가 계속 오르던 추세를 고려해 일반 분양을 최대한 미루면서 분양가를 높이려 했다. 시공사업단으로서는 일반 분양을 통해 공사비 일부를 회수하려던 계획이 어그러진 것이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둔촌주공 사업이 이렇게 꼬여 버린 것은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부터 시작해 분양가상한제, 조합 내홍, 철거공사 당시 석면 발견으로 인한 지연 등 여러 문제가 복합 작용한 결과”라면서도 “애초 분양가상한제로 인한 갈등 없이 일반 분양을 끝냈다면 지금의 사태까지 오진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 ‘모두 지는 게임’ 언제까지

현재의 갈등이 이어진다면 조합과 시공사업단 모두 지는 게임이 된다. 조합이 금융권과 맺은 대출액만 총 2조1000억 원(계약 금액 기준). 연간 이자 부담은 약 800억 원에 이른다. 사업이 지연될수록 조합이 부담해야 할 금융비용은 불어난다. 시공사업단 역시 공사가 지연되면 지체보상금을 떠안을 수 있는 데다 6000명에 이르는 조합원을 상대로 여론전을 펼치기에도 부담이 크다. 일반 분양 일정이 더 늦어지게 되면 투자금 회수가 그만큼 지연된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극적 협의’가 이뤄질 가능성은 남아 있다. 조합은 25일 이사회를 열고 시공사업단과의 계약을 해지하기 위한 총회 일정을 정할 방침이었지만 이사회 개최를 미뤘다. 서울시 중재로 마련된 시공사업단과의 협상이 이번 주 예정돼 있어서다. 갈등의 가장 큰 원인이었던 공사비와 관련해서도 조합은 증액 요인이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며 한발 물러서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조합 관계자는 “서울시 중재로 시공사업단과의 협상이 예정된 만큼 당장 이사회를 열지 않고 이번 주 협상 결과에 따라 대응 방안을 결정하겠다”고 했다.

다만 2023년 하반기(7∼12월)로 예정된 입주 일정 지연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시공사업단 관계자는 “공사 장비를 다 뺐기 때문에, 당장 협의가 이뤄진다 해도 공사 재개까지 최소 2개월은 걸린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둔촌주공에는 재건축 사업장 문제가 총체적으로 집약됐다고 본다. 둔촌주공처럼 분양 일정이 늦어지고 있는 서울 재건축 사업장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송파구 문정동 ‘힐스테이트e편한세상 문정’은 더 높은 분양가를 받기 위해 올해 상반기(1∼6월)로 예정된 일반 분양을 늦출 것으로 보인다. 서초구 ‘신반포15차’도 새 정부 출범 이후 택지비 평가를 받는 게 분양가 산정에 유리할 것으로 보고 분양 일정을 서두르지 않고 있다. 송파구 신천동 ‘잠실진주’은 분양가상한제 심사에서 조합이 원하는 수준의 분양가가 안 나오면 후분양으로 돌리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안 그래도 ‘공급 가뭄’ 수준인 서울 아파트 공급이 더 부족해지면 부동산 시장에 연쇄 충격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작게는 사업이 지연되며 조합원들이 자기 집에 다시 입주하는 시기가 늦어지고, 크게는 신규 분양 물량을 기다리고 있는 무주택 실수요자 전체가 공급 부족에 따른 피해를 입는다는 뜻이다.

장재현 리얼투데이 리서치본부장은 “둔촌주공뿐 아니라 다른 재건축 사업장의 분양 지연을 막기 위해서라도 분양가 규제를 현실화하는 등 민간 주도의 공급 확대가 이뤄질 수 있도록 관련 정책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순구 산업2부 기자 soon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