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측 한일정책협의대표단의 일본 방문을 계기로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가 내달 윤 당선인의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할지 여부에 재차 관심이 모아지고 잇다.
윤 당선인 측 대표단이 26일 기시다 총리를 예방한 자리에서 ‘미래지향적 한일관계 발전’을 당부하는 등의 내용이 담긴 당선인 친서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지면서다.
외교가에선 일단 “일본 측이 결단하지 않는 한 기시다 총리의 대통령 취임식 참석은 쉽지 않은 일”이란 견해가 지배적이지만, 일부에선 그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순 없다는 관측도 나온다.
일본 기업·정부를 상대로 한 우리 법원의 일제강점기 강제동원·일본군 위안부 피해배상 판결을 둘러싼 한일 양국 간 갈등을 이유로 일본 집권 자민당(자유민주당) 내 극우 보수 성향 인사들로부터 ‘한국에 먼저 유화적인 제스처를 취해선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사토 마사히사(佐藤正久) 일본 자민당 외교부회장은 최근 자국 언론에서도 기시다 총리의 우리 대통령 취임식 참석 문제가 거론되자,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단언하기도 했다.
기시다 총리 본인 또한 올 7월 참의원(상원) 선거를 앞두고 자민당의 주요 지지기반인 보수 성향 유권자들을 의식해야 하기에 “행동이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 사이에선 “일본의 전직 총리가 윤 당선인의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하는 게 그나마 현실적인 대안”이란 평가가 나오고 있다. 단, 이 경우 재임기간 한일갈등이 표면화된 아베 신조(安倍晋三)·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전 총리는 “논외로 해야 한다”는 요구도 있다.
조진구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일본센터장은 “기시다 내각의 현 지지율 추세를 봤을 때 한국 관련 사안이 참의원 선거에 미칠 영향은 미미할 것 같다”며 “우리 입장에선 ‘못 올 가능성이 크다’고 얘기하기보다 우리가 할 일만 하고 나머진 일본의 선택에 맡기면 된다”고 말했다. 외교관례상 각국 정상의 대통령 취임식 참석 여부는 해당 국가에서 결정할 일이다.
우리 대통령 취임식에 일본의 현직 총리가 참석한 건 지난 2008년 이명박 당시 대통령 취임식 때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총리가 마지막이었다. 2013년 박근혜 당시 대통령 취임 땐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와 모리 요시로(森喜朗) 전 총리가 일본 측 경축사절로 참석했다.
아소 부총리도 전직 총리 신분임을 감안할 때 일본 측에선 그간 우리 대통령 취임식 경축사절단의 ‘급’을 전·현직 총리로 맞춰왔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 앞서 1998년 김대중 당시 대통령 취임식엔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다케시타 노보루(竹下登) 전 총리가 참석했고, 2003년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가 왔다. 이에 노무현·이명박 대통령 취임식 땐 곧바로 한일정상회담이 열리기까지 했다.
일본 총리관저에 따르면 기시다 총리는 이날 정진석 국회부의장(국민의힘) 등 윤 당선인 측 대표단을 만난 자라에서 “규칙에 근거한 국제질서가 위협받고 있다”며 “한일·한미일의 전략적 연대가 이렇게 필요한 때가 없었고, 한일관계 개선은 미룰 수 없다”고 말했다.
다만 기시다 총리는 “(1965년) 국교정상화 이후 쌓아온 우호협력관계를 바탕으로 한일관계를 발전시켜가려면 옛 한반도 출신 노동자(강제동원 피해자) 문제를 비롯한 현안 해결이 필요하다”는 입장 또한 거듭 밝혔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