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도쿄 총리관저에서 성사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한일 정책협의 대표단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간 면담은 25분간 짧게 이뤄졌지만 한국 새 정부 출범을 기회 삼아 한일관계 개선을 추진하자는 공감대는 형성했다. 기시다 총리가 한국 측 인사와 대면 면담한 것은 지난해 10월 취임 후 처음이다.
다만 기시다 총리는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 문제에서 ‘배상을 위해 일본 기업의 한국 내 자산을 현금화하면 안 된다’는 기존 입장을 반복했다.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서는 이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는 인식도 보였다. 일본 측은 1964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강제징용 배상 문제를 완전히 해결했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어 실질적 관계 개선으로 이어지는 데 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 기시다 “관계 개선 더 미룰 수 없어”
윤 당선인은 대표단을 통해 보낸 친서에서 기시다 총리에게 “한일 양국이 새로운 출발선에서 과거를 직시하면서 미래 지향적 지향적 관계를 구축한 1998년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을 계승 발전시키자는 뜻을 전했다. 기시다 총리도 대표단에 한일관계 개선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며 한일관계 개선 의지를 밝혔다. 정 부의장은 “사흘째 일본에서 행보를 이어가는 데 단 한 사람의 예외 없이 새로운 한일 관계에 대한 기대감을 표시하는 것을 느꼈다”면서 “많이 달라진 것을 서로가 느낀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외교 소식통은 이날 동아일보에 “한일 양국이 ‘한국 새 정부의 출범이 한일 관계 개선의 기회’라는데 인식을 같이 했다”면서도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에 따른 일본 기업의 자산 현금화는 절대 안 된다는 일본 입장은 변화가 없는 상태다. 단번에 모든 게 해결되긴 어렵다”고 말했다. 다만 다른 소식통은 “대표단을 대하는 태도가 ‘과거사 문제의 답안지를 가져오라’며 문재인 정부를 압박하던 분위기는 아니었다”고 전했다.
●日 “취임식 참석 검토 중이지만…”
대통령 취임식의 기시다 총리 참석 여부를 놓고는 양국 모두 신중하다. 대통령직인수위 관계자는 “외교 경로를 통해 공식적으로 취임식 참석을 초청하지는 않은 것으로 안다”면서도 “대표단이 방일 기간 동안 비공식적으로 초청을 거론할 수는 있다”고 말했다. 다만 외교 소식통은 “총리 초청은 현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일본 정부 관계자는 동아일보에 “(취임식 참석을) 검토 중이지만 어려운 문제”라고 답했다. 집권 자민당 내 소수파인 기시다 총리는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한국에 유화적 모습을 취했다가 당내 보수파의 반발을 살 수 있는 점을 고민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날 일본 측은 대표단에 총리관저 로비에서 기자들에게 설명하지 말 것을 면담에 앞서 강하게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에서는 주목받는 인물이 관저를 방문하면 로비에서 자연스럽게 발언하는 것이 관례라 외교적으로 부적절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조아라 기자 like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