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다섯 살쯤 된 소년의 눈앞에 처음 보는 광경이 펼쳐진다. 한 살 위인 누나가 갑자기 바닥에 쓰러져 몸을 비틀고 숨을 헉헉거린다. 그는 옆에 누워 누나를 안심시키려고 말을 건다. 안쓰러운 마음이 그에게서 흘러나온다. 그는 누나가 말을 할 수 없는 상태라는 걸 알지 못하고, 누나가 발작에서 깨어날 때까지 말을 걸며 몸을 쓸어준다.
소년은 알지 못하지만, 분만 예정일을 훌쩍 넘겨 태어난 과숙아인 누나는 예방접종으로 인한 뇌수막염으로 영구적인 장애를 갖게 되었다. 누나는 보통 학교에 다닐 수도 없게 된다. 그는 아버지가 누나를 장애인 교육 시설에 데려다주고 계단에서 몸을 부들부들 떨며 우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아버지가 운다!
그런 기억들을 마음속에 담은 소년은 나중에 커서 첼리스트가 되었다. 그는 어른이 되어서도 누나를 극진히 보살폈다. 부모가 세상을 떠난 후로는 더욱 그랬다. 결혼을 하고도 가능하면 같이 있으려고 했다. 초청받은 연주여행에도 늘 같이 갔다. 그럴 때면 첼리스트인 한국인 아내와 아이들이 방 하나를, 그와 누나가 별도의 더블 룸을 사용하는 것이 관례가 되었다.
독일인 첼리스트 율리우스 베르거의 자전 에세이집 ‘이슬의 소리를 들어라’에 나오는 이야기다. 그러한 연민과 사랑은 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그의 글을 읽고 그의 첼로 연주를 들으면 묘한 온기가 느껴진다. 예술도, 연주도 인간적인 온기를 전제로 하는 것일까.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