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
정신분석 과정이 완벽해야 분석을 종결할 수 있을까요? 과거에 상당한 논란들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그런 생각 안 합니다. 마음에 고통을 주는 갈등이 분석을 받아도 완벽하게 제거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감당할 정도로 갈등이 부드러워지면 충분하다는 깨달음 때문입니다. 설령 하나를 없앤다고 해도 살면서 또 다른 갈등이 생깁니다. 분석의 궁극적 목표는 갈등에 끌려 다니지 않으면서 유연하게 대처하는 자기 성찰력을 키우는 것입니다.
문제를 완벽하게 제거, 예방해야 한다는 환상의 종착역은 시행착오와 좌절입니다. 살면서 겪는 일들은 다 이유가 있어서 생깁니다. 속이고, 어기고, 훔치는 행위는 인간의 본성에서 나오는 것이고, 막아내려는 시스템 역시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어서 작동할 때도, 작동 불량일 때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질병을 옮기는, 주변에 존재하면서 우리를 끊임없이 괴롭히는 바이러스와 같은 것들을 완벽하게, 영원히 박멸할 수 없듯이 삶에서 완벽함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설령 시험에서 100점을 맞아도, 어떤 일을 100% 달성해도 풀 수 없는 문제,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가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살이의 역설은, 완벽을 추구할수록 오히려 전체를 못 보고 쓸데없이 힘이 들어가서 무리한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하는 정신분석에서 완벽한 분석이 있을까요? 숙련된 분석가는 오히려 스스로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매번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할 뿐입니다. 분석가는 분석을 받는 사람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느껴도 그 사람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상대에게 느끼는 두려움이나 분노 같은 감정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깨달음으로써 분석의 품질을 높이려고 애씁니다.
어린아이들은 주변의 사물을 분명하고 완벽하게 배우고 익혀야 합니다. 삼킬 것과 뱉을 것, 만질 것과 만지지 않을 것을 가리지 못하면 병, 사고를 겪습니다. 어른은 달라야 합니다. 어른의 마음은 세상이 비록 완벽하지 않아도 어떻게 좋은 세상을 만들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무조건 뱉고, 덮어놓고 버리는 식은 어른의 방식이 아니어야 합니다. 어린아이의 세상이 흑과 백으로 나뉘는 세상이라면, 어른의 세상은 회색, 그것도 다양한 밝기의 회색 세상입니다. 덜 익은 것과 제대로 익은 것의 차이는 관점이 결정합니다. ‘완벽(完璧)’이라는 단어에는 심리적 만족감이 담겨 있습니다. ‘완벽’은 ‘흠이 없는 구슬’, 결함이 없이 완전함을 뜻합니다. 하지만 세상 어떤 구슬도 현미경으로 검색하면 여기저기 흠이 보입니다.
솎아내고 분류하고 줄 세우기에 바쁜 현대인들은 사회, 경제, 정치, 문화의 맥락 속에서 완벽주의를 확장, 심화시켜 나갑니다. 능력주의의 함정에 빠진 완벽주의자는 성취 기준을 지나치게 높게 잡고 결점 없이 일하려고 애를 씁니다. 자신이나 다른 사람이 일한 결과를 과도하게 비판적인 눈으로 평가합니다. 그러나 완벽은 현실이 아닌 소망, 환상, 착각입니다. 한쪽으로 치우친 선입견의 영향을 받습니다. 특히 외부에 의해 강제된 완벽주의는 절차에 기반을 두는 자율성에 장애를 일으키며 완벽함도, 자율성도 모두 상처를 입습니다.
부모의 완벽주의가 아이를 망치기도 합니다. 생각대로 아이를 통제하려 하니 개체로서 성장하고 독립해야 할 아이는 늘 불안, 우울합니다. 좌절을 거듭하고, 극단적인 경우는 나쁜 짓에 빠집니다. 결국 자신의 정체성과 존재의 의미를 상실한 아이는 부모가 기대하는 완벽한 사람이 아닌, 무력한 사람으로 자라납니다. 자신의 완벽주의가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하면서 부모 역시 좌절하게 됩니다.
완벽주의가 마음에서 움직이는 허전한 것을 감추기 위한 방패인 경우도 흔합니다. 비난, 수치심, 죄책감을 가리기 위한 완벽주의의 허상에 빠지면 현실 판단이 마비되면서 악순환을 겪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는 완벽주의, 생각이 없다가 주변의 압력을 받아 불쑥 동의한 완벽주의의 폐해는 심각합니다.
완벽함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람도, 조직도 필연적으로 실수를 거듭하면서 성장합니다. 환상에서 벗어나 완벽하지 않음을 인정하고, 실수를 통해 배우고 뉘우치고 개선하려는 의지를 발동시켜 합리성을 되찾는 일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