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석 제주지검장
대선 8일 전인 2012년 12월 11일. 민주통합당 제보를 받은 경찰은 국가정보원 여직원의 오피스텔에서 대치했다. 다음 날 수서경찰서(권은희 수사과장)는 그녀에게서 컴퓨터 2대를 제출받고 분석에 들어갔다. 12월 16일 오후 11시에 경찰은 느닷없이 ‘선거개입 댓글을 발견 못했다’는 발표를 했고, 12월 19일 박근혜 후보가 당선됐다.
‘검수완박’ 법안은 “범죄의 단일성과 동일성을 벗어나는 수사를 금지한다”. 법률가에게도 난해하다. 경찰에서 보낸 혐의만 수사하고, ‘여죄’가 드러나도 수사하지 말라고 검사에게 명령한다. 아예, 검사는 ‘선거·공직자 범죄’를 수사 못하게 해놨다. 누구나 알지만 정확히는 알지 못하는 ‘국정원 댓글조작’ 사건이 떠오른다. 이젠 검사가 수사 못하는 ‘여죄의 추억’이 될 테니.
2013년 1월 3일 경찰은 국정원 여직원이 인터넷 글에 100여 회 찬반만 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4월 1일 민주당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선거법 위반(공무원 이용 선거운동)과 국정원법 위반(정치관여·직권남용)으로 고발했다. 그러나 경찰은 국정원 여직원을 국정원법 위반 혐의만 적용해 검찰로 보냈고, 선거법 위반은 무혐의로 결론지었다. 만에 하나 선거법 위반이 인정되면, 갓 출범한 정권은 부정선거 시비에 휘말릴 것이 분명했다.
검찰은 원 전 원장을 소환하고, 국정원과 서울경찰청을 압수수색했다. 이후 1900건의 정치·선거 글과 1700회의 댓글 찬반을 지시한 혐의로 원 전 원장에게 선거법·국정원법을 모두 적용해 기소했다. 정치활동 여죄를 계속 수사해 그해 10월 공소장에 5만5689건을, 11월 2차로 110여만 건을 추가했다. 2017년 8월 서울고법은 선거법·국정원법 위반을 모두 인정해 징역 4년을 선고했고, 2018년 4월 대법원에서 확정됐으니, 경찰 수사 이후 5년 4개월 만이다.
‘검수완박’이었다면 검찰은 국정원장을, 그리고 100만 건 선거 개입 여죄를 수사할 수 없었다. ‘검수완박’은 검찰에서 여죄를 포착해도 경찰로 돌려보내면 문제없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실무 현장에서는 한가한 소리다. 그동안 ‘키맨’은 도피하고 입을 맞추고 증거는 사라지고 2차·보복 범죄와 피해가 속출한다.
아동학대에서 성폭력이 드러나도, 스토킹범의 휴대전화에서 다른 피해자의 성착취물이 나와도, 중고사이트 사기에서 수천 명 피해자를 찾아내도, 살인죄 진범이 밝혀져도, 뇌물죄 공범이 나와도, 밀입국자의 간첩 단서가 포착돼도, 억울한 피고소인에 대한 무고가 인정돼도 경찰로 돌려보내며 ‘잘 수사해 주십사’, 눈을 감아야 한다. 앞으로 ‘국정원 댓글조작’ 사건들은 묻힐 것이다. 이것이 정의인가. 이것이 국민에게 이익인가. ‘국정원 댓글조작’을 밝히지 말았어야 했단 말인가.
이원석 제주지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