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처벌법 시행 3개월]〈하〉애매모호한 규정에 현장 혼란
골조 공사 전문인 A건설사 대표 강모 씨(60)는 올여름 ‘역대급’ 폭염이 올 수 있다는 소식을 듣고 시름이 깊어졌다. 1년 동안 한 회사에서 열사병 환자가 3명 이상 나오면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법)상 중대산업재해로 분류돼 자신이 처벌받을 수 있어서다. 강 씨는 “건설 현장에서는 열사병이 워낙 흔한 데다 작업자의 컨디션이나 건강상태, 환경에 따라 증상이 다른데, ‘1년, 열사병 3명’ 등으로 처벌 대상을 일괄 적용하면 아무리 노력해도 결국은 처벌받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달 27일로 중대재해법 시행 3개월을 맞이하지만 지나치게 광범위하고 모호한 법령 때문에 현장 혼란이 오히려 가중되고 있다. 현장 조사나 수사를 담당하는 검찰과 고용노동부가 중대재해법을 놓고 다른 해석을 내놓고, 부처마다 낸 해설서만 500쪽이 훌쩍 넘는 등 정부가 오히려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실제로 법 시행 이후에도 사고는 계속 발생하고 있지만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된 사고는 26일 현재 1건뿐이다. ‘중대재해법 적용 1호’ 사건으로 주목받은 ‘삼표산업’에 대한 수사는 석 달째 결론을 내리지 못하는 등 불확실성이 여전하다. 중대재해법상의 모호성을 줄이고, 처벌 위주의 법을 수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각 부처 해설서만 500쪽 넘어…법령 모호”
공사비 50억 원 이상 현장만 중대재해법으로 처벌하는 조항 역시 형평성에 어긋나고 ‘쪼개기 계약’ 등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달 8일 경기 성남시 판교 제2테크노밸리 업무·연구시설 신축 현장에서 하청업체인 현대엘리베이터 와 공동수급한 업체 소속 근로자 2명이 추락해 사망했다. 이 사고에서 원청사인 요진건설은 중대재해법 적용 대상이 됐고, 현대엘리베이터는 대상에서 제외됐다. 현대엘리베이터가 요진건설과 한 하도급 계약 금액은 5억3900만 원으로 50억 원 미만이었기 때문이다. 대형 건설사 안전 담당 임원은 “중대재해법을 피하려고 50억 원 미만으로 ‘쪼개기 계약’을 하는 하청업체가 나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 정부 내에서도 중대재해법 서로 다르게 해석…“정부가 불확실성 키운다”
고용부와 국토교통부, 환경부 등 각 부처가 중대재해법과 관련해 낸 해설서는 모두 모으면 500쪽이 훌쩍 넘을 정도로 방대하다. 검찰이 내부적으로 배포한 별도 해설서도 600쪽에 이른다. 검찰과 고용부가 중대재해법을 달리 해석하는 등 정부가 오히려 불확실성을 키운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표적인 사례가 해외 사업장에서 사고가 났을 경우다. 검찰은 한국 법인이 파견 근로자를 보내고 실질적으로 지배한다면 적용 대상이 된다고 본다. 하지만 고용부 해설서에 따르면 해외에 설립된 별도 법인은 적용 대상이 아니다.
파견 근로자를 상시 근로자로 포함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고용부와 검찰의 해석이 엇갈린다. 현재 중대재해법은 50인 이상 사업장에만 적용된다. 이 50인 이상을 판단할 때 고용부는 파견 근로자까지 포함하지만 검찰은 포함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다.
최동수 기자 firefly@donga.com
정순구 기자 soon9@donga.com
정서영 기자 cer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