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AP/뉴시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에 대한 견제 장치가 26일(현지 시간) 마련됐다. 상임이사국이 어떤 사안에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그 이유를 총회에서 반드시 설명하도록 하는 규정이 생겼다.
유엔 총회는 이날 회의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의 결의안을 투표 없이 컨센서스(합의)로 채택했다. 유럽 소국 리히텐슈타인이 주도하고 미국 영국을 비롯한 83개국이 공동 제안한 이 결의안은 안보리에서 거부권이 행사되면 열흘 이내 총회를 열고 해당 상임이사국 대표가 첫 발언자로 나와 그 이유를 설명하도록 규정했다. 회원국은 총회에서 이에 대해 토론할 수 있다.
이 결의안은 상임이사국 거부권을 원천 차단한 것은 아니지만 총회에서 논의하게 함으로써 거부권 행사를 외교적으로 압박하는 효과가 있을 수 있다. 이 결의안은 즉각 효력을 발휘한다.
이번 결의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견제하려는 포석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전쟁 당사국인 러시아가 자국을 향한 제재나 규탄 결의안에 모두 ‘셀프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유엔을 무기력한 존재로 만들었다는 비판이 나왔다. 이로 인해 최근 유엔에서는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후 탄생한 현 안보리 시스템을 전면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엔 총회 차원에서 러시아를 규탄하는 결의안이 두 번 통과됐지만 안보리 결의와 달리 법적 구속력이 없다. AP통신은 “안보리를 개혁하자는 시도는 지난 40년간 이어졌지만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면서 “이번에 유엔 총회가 상임이사국 거부권 행사에 국제사회 주의를 환기시키는 첫걸음을 내디뎠다”고 평가했다.
비록 우크라이나 사태가 계기가 돼 통과되긴 했지만 이번 결의는 향후 북한에 대한 안보리 논의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중국이나 러시아가 북한 핵실험 또는 미사일 발사에 대한 안보리 제재에 거부권을 행사할 때마다 총회가 소집될 수밖에 없다. 자연스럽게 북한 문제가 유엔 무대에서 자주 논의되면 중국과 러시아는 거부권 행사에 부담을 느끼게 될 수 있다.
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