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실행한 대외 정책 가운데 가장 훌륭한 프로그램이다.” 안병만 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풀브라이트(Fulbright) 장학금을 두고 했던 말이다. 그 자신이 풀브라이트 장학생이었던 안 전 장관은 재임 시 ‘한국형 풀브라이트 사업’을 추진할 정도로 이를 높이 평가했다. 한국에서는 한승수 전 총리와 조순 권오기 이기준 김동연 전 부총리, 한승주 전 외교부 장관, 정정길 전 대통령비서실장 등 100여 명의 주요 인사 이름이 ‘동문 저명인사’ 명단에 올라 있다.
▷김인철 교육부총리 후보자가 본인뿐 아니라 부인과 아들, 딸까지 가족 4명이 전부 이 장학금을 받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풀브라이트’라는 이름은 갑자기 동네북 신세가 되는 분위기다. 선발 과정의 공정성을 둘러싼 각종 의혹에 김 후보자 측의 거짓 해명까지 문제가 되면서 그를 향한 사퇴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풀브라이트 장학금의 명성과 신뢰까지 금이 가게 될 판이다.
▷엉겹결에 한국의 정치 검증판에 소환됐지만, 풀브라이트는 로즈 장학금과 함께 글로벌 장학금의 양대 축으로 불리는 권위 있는 장학 프로그램이다. 1946년 제임스 윌리엄 풀브라이트 미 상원의원이 창립을 주도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재건을 위한 인재 양성의 필요성을 절감한 그는 미국의 잉여 농산물을 외국에 공매한 대금을 문화, 교육 교류에 쓸 수 있도록 하는 ‘풀브라이트법’을 만들어 재원을 조달했다. 장학생 중에서 노벨상 수상자 61명과 퓰리처상 수상자 89명, 총리 혹은 대통령 40명이 배출됐다.
▷풀브라이트 장학생들이 2년간 지원받는 학비와 생활비는 합쳐서 최대 15만 달러 가까이 된다. 가정 형편이 실력보다 앞설 것은 아니다. 그러나 능력이 비슷하다면 더 절실하고, 더 필요한 이들에게 우선적으로 가는 게 장학금이다. 김 후보자의 가족과 측근들의 ‘끼리끼리’ 나눠 먹기로 인해 유학을 꿈꾸던 어느 가난한 청년의 날개가 꺾였던 것은 아닐까. 사회 지도층의 절제를 찾아보기 어려우니 국내는 물론 전 세계 160개국의 풀브라이트 장학생들 앞에서도 참 민망한 일이다.
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