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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의 어업, ‘숭어들이’[김창일의 갯마을 탐구]〈77〉

입력 | 2022-04-28 03:00:00

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바다를 터전으로 삼은 노인들은 반신반의한 눈빛으로 대강당에 앉아 있었다. 서울 소재 박물관에 근무하는 사람이 서해안 어업에 대해 강의한다니 미덥지 않았을 터. 조기, 꽃게, 젓새우, 숭어 등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틈틈이 질문을 했다. 서해에서 흔히 보던 어류였을 테니 나이 지긋한 청중들은 적극적으로 호응했다. 웅어 사진을 보여주자 웅어가 아니라 ‘우어’(웅어의 방언)라고 응수한 청중 때문에 강당은 한바탕 웃음바다가 됐다. 노인은 ‘우어’를 표준어라 여겼던 것이다. 이를 계기로 물고기 명칭으로 강의 방향이 흘렀고, 지역별로 가장 다양한 방언을 가진 숭어에 대해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며칠 전 충남 보령에서 강의할 때 에피소드다.

강의 후 귀갓길에 한국해양대 교수의 전화를 받았다. 필자가 쓴 가덕도 숭어들이 어업에 관한 책을 읽다가 전화했단다. 부산지역 일간지 칼럼에 인터뷰 내용을 싣고 싶다고 했다. 때마침 숭어 강의를 했던 터라 기쁜 마음으로 응했다. “숭어들이는 가덕도, 통영, 거제 등 남해안 일부 어촌에서 행하는 어법으로 숭어가 다니는 길목에 그물을 가라앉혀 뒀다가 지나갈 때 끌어올려 어획하는 방식이다. 어군탐지기 대신 육지에 있는 망지기 노인의 시력에 의존하는 매우 희귀한 어업 형태다. 망지기 역할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므로 사후에 풍어를 관장하는 신으로 추앙받는다. 뒤를 잇는 망지기와 선원들은 제단을 만들어 선대 망지기 위패를 모셔두고 매년 고사를 지내는데 다른 곳에서 보기 어려운 독특한 사례다”라고 답변했다.

통화를 마치자 핵심을 빠뜨린 것 같아 아쉬웠다. 장거리 운전을 하는 내내 숭어들이를 표현할 어휘를 고민한 결과 ‘기다림’으로 귀결됐다. 숭어잡이를 진두지휘하는 망지기 노인과 20여 명의 선원들은 무작정 기다린다. 동트기 전에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서 6척의 무동력 목선에서 대기한다. 숭어는 소리에 민감해 엔진 소리가 나면 접근하지 않으므로 무동력선을 이용하는 것이다. 무료한 시간을 보내다가 빈 배로 돌아갈 때가 부지기수다. 내리쬐는 햇볕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빗방울은 간이 천막을 치고 버틴다. 숭어잡이 철에 작은 목선은 선원들 집이 된다.

절벽 위에서 숭어 떼를 기다리는 망지기 노인 역시 기다림의 연속이다. 바다에서 눈을 뗄 수 없으므로 목선에서 음식을 조리해 육지와 연결한 밧줄로 식사를 배달한다. 망지기는 바닷물 색깔과 파도의 미세한 일렁거림으로 숭어 어군을 알아채야 하고, 선원을 통제할 수 있는 카리스마, 새벽부터 해질녘까지 오로지 바다만 응시하는 집중력이 필수요건이다. 망지기 김관일 씨(78)는 아무리 졸려도 눈을 감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졸다가 숭어 떼를 놓치면 온종일 배 위에서 기다리던 선원들 얼굴을 어떻게 보겠어요. 망지기의 첫째 덕목은 바다를 주시하며 숭어가 나타나기를 진득하게 기다리는 겁니다”라는 말에서 숭어들이는 기다림의 어업임을 재차 확인했다.

지금은 해안가에 설치된 기계식 양망기가 목선과 선원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그나마 망지기 역할은 유지돼 오늘도 노인은 숭어를 기다린다. 사라져가는 이유가 있겠으나 기계로 대체되지 않는 것 하나쯤은 오래 남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물 당기는 선원들 구령은 양망기 엔진 소리로 바뀌었고, 해변 언덕에 방치됐던 목선은 태풍에 유실됐다.

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