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 尹 ‘식물대통령’ 만들기 프로젝트 가동 安과의 공동정권 공고화로 중도 민심 잡아야
정용관 논설위원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고독’을 언급했다. 출연 논란을 빚은 예능 프로그램에서다. “대통령은 고독한 자리라고 생각한다” “당선되고부터는 숙면을 잘 못한다” 등등. 최고 권력자가 무한 책임을 느끼는 건 당연하다. 그 책임감이 꼭 좋은 판단과 행위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지만…. 분명한 건 고독의 감정조차 사치로 여겨질 정도로 당선인이 처한 사정이 열악하다는 점이다.
171석 민주당과 지지 세력은 점점 노골적으로 ‘식물대통령’ 만들기 프로젝트 가동에 나선 듯하다. 한덕수 총리 후보자를 낙마 리스트 상단에 올려놓은 것도 엄포용만은 아니다. 질질 끌다 기진맥진해 있을 때 인준을 해줄지, 아예 끌어내릴지 주판알을 두드릴 것이다. 총리 인준을 고리로 장관 후보자들 몇 명의 목을 내놓으라고 할 수도 있다. 정호영은 기본이고 궁극의 칼날은 한동훈을 겨냥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진영을 향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대통령 간의 성공 기원은 인지상정이다” “퇴임 후 잊혀진 삶을 살고 싶다” 등의 말은 허공으로 흩어졌다. “야당 후보로 당선은 아이러니한 일” “저는 한 번도 링에 올라가지 못했다” 등 후임 대통령을 깎아내리고 5년 만에 정권을 내준 데 대해 자기 책임은 없다는 식의 낯 두꺼움을 보여줬다. 그런 문 대통령 지지율이 윤 당선인 직무 수행 평가를 앞서기도 하니 지금 상황은 꼬일 대로 꼬여 있는 형국이다.
이런 판국인데도 서울 부산은 따 놓은 당상이라고 국민의힘은 자신할 수 있을까. 윤 당선인이 올라선 성루 자체가 흔들흔들하고 있다. 원조 윤핵관 출신 원내대표는 황당한 검수완박 자책골로 경기 흐름에 찬물을 끼얹었다. 30대 당 대표는 성상납 및 증거인멸 교사 의혹에 휘말린 채 여기저기 눈치를 보고 있는 실정이다. 윤 당선인의 첫 내각 인선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나오면서 정권교체를 위해 닥치고 찍었던 이들 중 일부는 벌써 냉랭한 태도로 돌아서고 있다.
윤 당선인은 ‘일정 과부하’로 정작 어떻게 새 정부를 이끌고 갈지, 어떤 인물을 주변에 둘지를 차분히 정리할 시간조차 없어 보인다. 이 사람 저 사람 만나고 이 일정 저 일정 쫓아다니며 여전히 대선 후보인 듯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어 하다가 한 달 후딱 지나가고 지방선거 성적표를 받아들 시점이 된다. 취임 후 한 달을 어떻게 보낼지는 당선 후 한 달보다 더 중요하다.
당분간 윤 당선인에겐 ‘정책’보다는 ‘정무’가 더 중요한 시기가 아닐까. 국민의힘도 이쯤이면 지도부를 다시 세우는 방안을 검토하거나 속히 선대위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 원내대표의 중대 실책도 어물쩍 넘어갈 일이 아니다. 새 정권의 권력을 누가 더 쥘지의 우물 안 싸움에 함몰돼선 안 된다. 안철수 측과의 공동정권 기반을 공고히 하고 편향된 인사를 바로잡아 중도 민심을 얻어야 한다. 새 정부가 출범도 하기 전부터 비틀대는 것은 국가의 불행이다.
정용관 논설위원 yonga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