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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박중현]단순 노무직 찾는 청년들

입력 | 2022-04-29 03:00:00


일본의 싱어송라이터 나가쿠보 도루(長久保徹)가 1985년 자신의 노래에 사용한 ‘프리아르바이터(free+arbeiter)’란 말은 “취직의 틀에서 벗어났어도 자신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계속 노력하는 사람”이란 뜻이었다. 2년 뒤 취업정보업체 리크루트가 이 말을 줄인 ‘프리터’를 ‘원할 때 필요한 만큼 일하는 청년’을 지칭하는 용어로 쓰기 시작했다. 일본 경제의 버블이 한창이어서 짧게 일하고도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있던 시절이었다.

▷동아일보 취재팀 분석에 따르면 작년 한국의 15∼29세 청년 취업자 중 배달 판매 경비 등 ‘단순 노무직’으로 일하는 청년의 수가 41만3000명이었다. 40만 명이 넘은 건 처음이고 전년 대비 증가율도 11.3%로 전체 청년 취업자 증가율 3.0%보다 훨씬 높았다. 양질의 일자리 취업이 어려워 비숙련 단기 일자리에 머물러 있는 프리터족(族)이 많아졌다는 뜻이다.

▷같은 단순 노무직이라도 용돈 벌려고 일하는 것과 생계를 유지하려고 일하는 건 다르다. 일본의 프리터도 경기가 좋던 시절 취직을 거부하고 파트타임으로 일하며 높은 임금을 챙긴 1980년대 ‘거품기(期) 프리터’와 버블이 꺼진 1990년대 이후 취업이 안 돼 저임금을 받으며 생활비를 번 ‘빙하기 프리터’로 나뉜다. 지금 단순 노무직으로 일하는 한국 청년들은 마음에 차는 직장을 찾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일하는 경향이 강하다.

▷청년의 단순 노무직 증가는 코로나19 이후 음식배달, 택배 등 배달 일거리가 급증한 영향이 크다. 유통, 배달업체들이 적자까지 봐가며 배달 속도 경쟁을 벌이는 바람에 배달비가 건당 최대 1만 원까지 치솟아 배달 일만 해도 돈을 웬만큼 버는 청년이 늘어났다. 문재인 정부 5년간 41.6%나 오른 최저임금도 한몫했다.

▷대학진학률 70%가 넘는 한국 청년들의 ‘하향 취업’은 생산연령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한 한국 사회에 큰 손실이다. 20, 30대에 전문성과 숙련도를 높일 기회를 놓치면 나이 들어 청년층, 외국인 노동자와 질 낮은 일자리를 놓고 다투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일본에선 청년기에 프리터로 살다가 40, 50대에 부모 연금에 의지하는 ‘기생형 싱글’이 사회 문제다.

▷다행히 전문 기술을 쌓기 위해 전문대에 ‘유턴 입학’하는 대학 졸업자들이 늘고, 미취업 청년 대상으로 삼성이 진행하는 소프트웨어 교육에도 지원자가 몰린다. “평생 알바 하며 사는 게 낫지 않나”라는 청년들의 말은 아직까지 취업난에 지쳐서 하는 푸념에 가깝다. 이들이 탈진하기 전에 괜찮은 일자리를 더 만들고, 교육 과정도 손봐야 한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