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싱어송라이터 나가쿠보 도루(長久保徹)가 1985년 자신의 노래에 사용한 ‘프리아르바이터(free+arbeiter)’란 말은 “취직의 틀에서 벗어났어도 자신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계속 노력하는 사람”이란 뜻이었다. 2년 뒤 취업정보업체 리크루트가 이 말을 줄인 ‘프리터’를 ‘원할 때 필요한 만큼 일하는 청년’을 지칭하는 용어로 쓰기 시작했다. 일본 경제의 버블이 한창이어서 짧게 일하고도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있던 시절이었다.
▷동아일보 취재팀 분석에 따르면 작년 한국의 15∼29세 청년 취업자 중 배달 판매 경비 등 ‘단순 노무직’으로 일하는 청년의 수가 41만3000명이었다. 40만 명이 넘은 건 처음이고 전년 대비 증가율도 11.3%로 전체 청년 취업자 증가율 3.0%보다 훨씬 높았다. 양질의 일자리 취업이 어려워 비숙련 단기 일자리에 머물러 있는 프리터족(族)이 많아졌다는 뜻이다.
▷같은 단순 노무직이라도 용돈 벌려고 일하는 것과 생계를 유지하려고 일하는 건 다르다. 일본의 프리터도 경기가 좋던 시절 취직을 거부하고 파트타임으로 일하며 높은 임금을 챙긴 1980년대 ‘거품기(期) 프리터’와 버블이 꺼진 1990년대 이후 취업이 안 돼 저임금을 받으며 생활비를 번 ‘빙하기 프리터’로 나뉜다. 지금 단순 노무직으로 일하는 한국 청년들은 마음에 차는 직장을 찾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일하는 경향이 강하다.
▷대학진학률 70%가 넘는 한국 청년들의 ‘하향 취업’은 생산연령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한 한국 사회에 큰 손실이다. 20, 30대에 전문성과 숙련도를 높일 기회를 놓치면 나이 들어 청년층, 외국인 노동자와 질 낮은 일자리를 놓고 다투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일본에선 청년기에 프리터로 살다가 40, 50대에 부모 연금에 의지하는 ‘기생형 싱글’이 사회 문제다.
▷다행히 전문 기술을 쌓기 위해 전문대에 ‘유턴 입학’하는 대학 졸업자들이 늘고, 미취업 청년 대상으로 삼성이 진행하는 소프트웨어 교육에도 지원자가 몰린다. “평생 알바 하며 사는 게 낫지 않나”라는 청년들의 말은 아직까지 취업난에 지쳐서 하는 푸념에 가깝다. 이들이 탈진하기 전에 괜찮은 일자리를 더 만들고, 교육 과정도 손봐야 한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