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안드레스 솔라노 콜롬비아 출신 소설가
10여 년 전 출판했던 책에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장인어른의 명료했던 정신은 날마다 흐려져 가고 있었다. 수정은 아버지가 어떨 땐 같은 말을 무한 반복했다가 어떨 땐 입을 꾹 다물고 있다고 했다. 텔레비전과 신문을 보며 침묵으로 시간을 보낸다. 아파트에 들어서서 인사를 드릴 때면 혹시나 나를 못 알아볼까 더럭 겁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장인어른은 항상 나의 손을 잡으며 환대했다. 그의 눈 속에는, 잠깐이나마, 삶이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나는 내가 장인어른에게 낯선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이 무척 기뻤다. 그와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 세대의 엄격하고 무뚝뚝한 한국 남자들과는 다르게 상냥한 사람인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제는 가까워질 수 없다. 깊숙이 침투한 안개로부터 그를 구해낼 방법이 없다. 치매는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벌인 것 같다. 하얗게 지워진 얼굴로 삶을 살아가는 기분일 것이다. 오후에 수정과 나는 옛 사진을 보았다. 첩첩산중의 한 암자 앞에서 찍은 장인어른의 사진이었다. 함께 야구를 하는 친구들, 함께 군대를 나온 동기들과 찍은 사진도 있었다. 장인은 한반도에서 세 번째로 높은 산이자, 남쪽 지방에서 신성하게 여겨온 지리산의 한 마을에서 나고 자랐다. (중략)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진은, 오토바이 옆에 서서 기하학 패턴의 원피스를 입은 시골 여자들에게 둘러싸인 사진이다.”
그리고 2주 전, 사진들을 다시 찾아보게 됐다. 부산 처갓집에 내려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이상 장인어른은 계시지 않았다. 벚꽃이 잔뜩 만개했던 그 봄날, 장인어른은 세상을 떠나셨다. 공항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장례식장으로 가던 길의 창 너머로, 낙동강을 따라 기다랗게 줄지어 있는 벚나무들이 보였다. 아내가 말했다. 아빠가 주는 마지막 선물이야.
부산 집에서, 이전에는 놓쳤던 사진을 하나 보았다. 환하게 웃고 있는 장인어른의 등에는 작은 두 딸이 함께 업혀 있었다. 장인어른은 자신의 가문과 혈통을 물려줄 아들을 갖는 데엔 크게 관심이 없으셨던 걸로 안다. 하지만, 한국의 장례에서는 장남이 의식을 주재한다. 아들이 없으면, 장녀의 사위가 그 역할을 대신하는데, 나의 아내가 장녀인 연유로 내가 그 일을 맡게 되었다. 손님들이 찾아올 때마다 맞이하고 절을 했다. 문득 찔리는 순간이 있기도 했다. 글을 쓰는 것이 직업인 탓에, 나에게는 낯선 이 모든 경험을 글로 쓰고 싶어져서 화장실로 들어갔을 때 메모까지 해 두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작가라는 징역일 것이다. 단 한순간도 생각을 멈추지 않고,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모든 것들이 이야기로 정리된다. 탈출할 수 없는 감옥과 같은 이 일을, 나는 지금까지도 하고 있다.
추모공원에서, 장모님과 나의 아내, 아내의 여동생이 서류에 서명하는 동안 나는 유골함을 들고 근처의 벤치 의자에 앉았다. 친척들도 그 순간에는 각자 바빴기 때문에 나는 잠시 홀로 남겨졌다. 나는 유골함을 내 옆자리에 두고 기다렸다. 그러다 갑자기 고개를 돌려, 함을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장인어른을 알게 되어서 영광이었어요. 저렇게 사랑이 많은 두 딸을 키워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안드레스 솔라노 콜롬비아 출신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