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러의 시간/제임스 폭스 지음, 강경이 옮김/468쪽·1만8800원·윌북 바다 너머의 세계 상징했던 파랑, 지금은 우리 지구의 색으로 인식 문화권-시대에 따라 의미 달라진 일곱 가지 색에 관한 사회문화사
1968년 12월 아폴로 8호 승무원들이 촬영한 달 표면 뒤로 모습을 드러낸 푸른 지구. 미국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지구를 ‘창백한 푸른 점’이라고 불렀다. 윌북 제공
세상의 끝은 늘 파란색이었다. 인류가 대양을 항해하기 전 푸른 수평선 너머는 미지의 세계를 뜻했다. 시대를 불문하고 가장 비싼 색은 단연 쪽빛 ‘울트라마린’이었다. 13세기 베네치아의 상인들은 청금석을 빻아 만든 아프가니스탄산 파란 안료를 ‘올트레마레(Oltremare)’라고 불렀다. 이탈리아어로 바다 건너에서 왔다는 뜻. 파란색 자체가 다른 세상을 상징한 셈이다. 하지만 1961년 4월 12일 유리 가가린이 푸른 하늘 너머 지구 궤도를 한 바퀴 돈 날부터 인류에게 파랑은 새로운 의미를 갖는다. 그가 우주선에서 지구를 바라보며 이런 말을 남겼기 때문이다. “지구는 푸른 후광을 갖고 있어요.” 하늘 너머 세상의 끝을 탐험한 인류가 내린 결론은 오랜 세월 다른 세계의 색이라고 여겼던 파랑이 우리 지구의 색이었다는 것이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이매뉴얼 칼리지 미술사학과 교수인 저자는 심리학, 언어학, 고인류학 등을 넘나들며 검정, 하양, 파랑 등 7가지 색에 대한 사회문화사를 풀어냈다. 페르시아 시인의 노랫말과 존 밀턴의 ‘실낙원’, 클로드 모네의 작품 등 색채와 얽힌 예술사도 흥미롭다.
16세기 이탈리아 화가 티치아노가 그린 ‘바쿠스와 아드리아네’. 당시 베네치아에서 가장 비싼 안료인 ‘쪽빛 울트라마린’으로 하늘을 칠했다. 울트라마린은 다른 일반 안료에 비해 100배 가까이 비쌌다. 윌북 제공
하지만 “색의 의미는 보고 사용하는 사람들이 창조한다”는 저자의 말처럼 색은 다르게 보려는 자에게 다르게 읽히는 법. 오늘날 기득권에 저항하는 새로운 트렌드를 ‘새로운 검정(the new black)’이라 부르는 이유는 미술사에서 그림자나 악마를 칠하는 데 쓰였던 검은색을 캔버스 전면에 바른 예술가들, 검은색 피부에 대한 차별에 맞선 인권운동가들 덕분이다. 색의 역사는 편협한 사고를 허물며 더욱 다채로워졌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