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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온다” 평산마을 방문객 늘어… “교통 혼잡-사생활 침해” 우려도

입력 | 2022-04-30 03:00:00

[위클리 리포트]‘문재인 대통령 사저’ 양산 평산마을 가보니
文입주 다가올수록 방문객 증가… 마을회관 마당까지 주차하자
“안길 외부차량 출입금지” 표지판… “대통령과 한 마을 살게 돼 자부심”
“이젠 조용하게 사는 건 포기”… 주민들은 기대와 걱정 교차해



사저 구경하는 방문객들 28일 경남 양산시 하북면 평산마을의 문재인 대통령 사저를 찾은 방문객들이 사저를 구경하고 있다. 문 대통령 입주일이 가까워지면서 평산마을을 찾는 관광객도 늘고 있다. 양산=박경모 기자 momo@donga.com




文대통령 내려갈 평산마을 가보니


30일로 문재인 대통령 임기 만료가 D-10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문 대통령은 다음 달 9일 오후 6시 청와대에서 나와 서울 모처에서 밤을 보낸 뒤 10일 국회에서 열리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취임식에 참석한다. 취임식이 끝나면 김정숙 여사와 함께 KTX를 타고 울산역에 내린 뒤 13km가량을 차로 이동해 경남 양산시 평산마을 사저에 입주하게 된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불교계 원로들을 만나 “(퇴임 후) 자연으로 돌아가서 잊혀진 삶, 자유로운 삶을 살겠다”고 했다. 이달 25일 청와대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선 “특별히 무슨 은둔 생활을 하겠다, 그런 뜻은 전혀 아니다”라면서도 “현실 정치에 관여하지 않고, 특별히 주목을 끄는 그런 삶을 살고 싶지 않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과연 문 대통령은 자신의 뜻대로 조용한 여생을 보낼 수 있을까. 문 대통령의 입주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평산마을의 모습과 주민 분위기를 취재해 봤다.
○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평산마을

평산마을은 경남 양산시 하북면에 있다. 28일 오후 경부고속도로 통도사나들목을 빠져나오자 유명 테마파크인 ‘통도환타지아’가 나타났다. 확장 공사가 한창인 2km가량의 도로를 지나니 45가구가 모여 있는 평산마을이 보였고, 문 대통령 사저도 눈에 들어왔다.

문 대통령 내외가 2020년 4월 10억6401만 원에 매입한 2630.5m²(약 795.6평)의 대지에 신축된 사저는 ‘영남 알프스’로 불리는 영축산에 안겨 있었다. 사저 설계는 문 대통령의 경남고 동창인 승효상 이로재건축사사무소 대표가 맡았고, 책을 펼쳐서 엎어놓은 모양으로 회색 박공지붕을 얹었다. 상아색과 회색을 조합한 벽면은 한옥을 연상케 했다.

사저 인근에는 방문객 수십 명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지난 주말(23, 24일)의 경우 하루 300명 이상이 다녀가는 등 문 대통령의 입주가 다가올수록 방문객도 증가하는 추세다. 울산 남구에서 온 50대 여성 A 씨는 “영축산에 등산 온 김에 사저를 찾았다”며 “정들었던 곳을 떠나 서운하시겠지만 새 이웃들과 편안히 잘 지내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정숙 여사, 사저 방문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가 이달 21일 경남 양산시 하북면 평산마을 사저에 방문해 이삿짐이 들어오는 것을 지켜보며 관계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부산일보 제공 

이날 마을 곳곳에는 ‘경축, 성공한 문재인 대통령님과 김정숙 여사님의 귀향을 환영한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한 주민은 “대통령과 한 마을에 살게 돼 자부심이 생긴다”며 “대통령 귀향의 기회를 잘 살려 지역이 발전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방문객 증가에 따른 교통 혼잡과 사생활 침해를 우려하는 주민들도 많았다. 방문객들이 마을회관 마당과 도로까지 주차하자 주민들은 ‘마을 안길 외부차량 출입금지, 평상마을주민 일동’이 적힌 표지판을 세웠다. 양산시 역시 도로 주변에 불법주차 금지를 알리는 플래카드를 붙이고 불법주차 단속을 하고 있다.

한 주민은 “문 대통령 내외의 선택으로 우리 마을이 역사적 장소가 됐다”면서도 “혼잡이 더 심해질 것이고 경호로 인한 불편까지 더해져 조용히 사는 건 포기해야 할 것 같다”고 걱정했다. 다른 주민은 “혹여 갈등의 단초가 될까 싶어, 주민들이 서로 눈치만 보고 (문 대통령의 입주에 대해) 말을 가급적 안 하려는 분위기도 있다”고 말했다.

29일엔 주민이 아닌 보수단체 회원 40여 명이 평산마을 입구에서 문 대통령의 귀향을 반대하는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문 대통령은 국정 수행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이 마을에 오는 것을 두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보수단체들은 앞으로도 시위를 계속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지역 발전에 대한 의견도 엇갈린다. 사저가 있는 평산마을과 인근 지산·서리마을 상인들은 상권 활성화를 기대하는 눈치다. 반면 하북면 초입에 형성된 중심 상권 상인들은 “잠시 스쳐가는 장소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하북면 전체 상권에 미치는 긍정적인 효과는 미미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북면의 한 음식점 주인은 “사저를 구경 오는 방문객이 늘었다지만 매출에 변화는 없다”며 “앞으로도 큰 기대는 없다”고 했다.
○ 들썩이는 부동산…“호가 너무 올라 거래 실종”

진입로 공사 28일 문재인 대통령 사저로 이어지는 경남 양산시 하북면 평산마을 진입로에서 정비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양산=박경모 기자 momo@donga.com 

평산마을 일대 부동산은 벌써부터 들썩이고 있다. 마을 인근의 한 공인중개사는 “평산마을은 우리나라 3대 사찰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통도사, 영축산, 통도환타지아 등 관광인프라가 있는 데다 대통령 사저까지 들어서면서 ‘핫플레이스’로 뜨고 있다”며 “카페가 빠르게 늘고 있어 부동산업계도 깜짝 놀라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부동산 호가도 치솟고 있다. 평산마을과 지산·서리마을의 일반 자연녹지의 경우 현재 3.3m²당 호가가 250만 원으로, 대통령 사저 신축 사실이 알려지기 전(3.3m²당 130만∼150만 원)보다 두 배 가까이로 뛰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입주하면 가격이 더 오를 것”이란 기대감 탓에 부동산 소유주들이 지나치게 높은 호가를 제시하는 바람에 정작 거래는 실종 상태다. 하북면의 한 공인중개사 대표는 “땅 주인이 호가를 너무 올리다 보니, 투자 문의는 많지만 매매로 이어지는 경우는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중개사무소 대표는 “전원주택 부지 매물이 간혹 나오지만 대부분 825m²(약 250평) 이상 규모”라며 “땅값만 5억 원에 건축비까지 하면 10억 원이 넘는데, 시골 주거지로는 너무 비싸다 보니 거래가 이뤄질 수 없다”고 했다.

문 대통령이 온다는 소식이 알려진 직후 부동산 큰손들이 일대 땅을 연이어 매입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한 부동산 업자는 “지금 커피숍을 짓고 있는 땅은 대통령이 온다는 소식이 알려진 2020년 상반기(1∼6월) 순식간에 거래된 것”이라며 “외지 투자자들이 매물로 나온 땅을 싹쓸이했고, 이후에는 호가만 크게 오르고 거래는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 제2의 봉하마을?…지역에선 “공간적으로 불가능”
문 대통령은 25일 청와대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과거 노무현 대통령은 하루에 한 번씩은 시골까지 찾아온 분들이 고마워서 그분들과 인사하는 시간을 가졌었는데, 저는 그렇게는 안 할 생각”이라며 “일부러 그런 시간, 일정을 잡지는 않겠다”고 했다.

20일에는 이낙연, 정세균 전 국무총리 등 문재인 정부에서 국무위원을 지낸 인사 등과 청와대에서 오찬을 하며 “(양산 사저에서) 가까이 있는 통도사에 가고 영남 알프스 등산을 하며 텃밭을 가꾸고 개 고양이 닭을 키우며 살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퇴임 후 바람대로 ‘잊혀진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한 양산시 공무원은 “대통령을 지낸 분이 하루아침에 세간의 관심에서 지워질 수 있겠느냐. 대통령의 의지와 무관하게 정치적 영향력이 발휘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당장 경남지역 정가는 6·1지방선거에서 최대 격전지로 꼽히는 경남 양산과 김해 표심에 문 대통령의 귀향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벌써부터 문 대통령이 ‘잊혀진 삶’을 살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평산마을이 김해 봉하마을과 함께 진보 진영의 구심점이 될지도 관심사다. 봉하마을은 매년 100만 명 이상이 다녀가는 인기 방문지다. 문 대통령 사저에서 봉하마을까지는 차량으로 50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그러나 문 대통령 사저는 제2의 봉하마을이 되긴 어렵다는 게 이 지역 사람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산자락에 있는 사저로 가는 길이 폭 4∼6m에 불과한 이면도로뿐이어서 방문객 차량이 몰리면 통행하기 쉽지 않다. 인근에 마땅한 주차장도 없을뿐더러 주차장 부지도 마련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양산시는 방문객이 몰려들 경우 인근 통도사 산문주차장(394대)으로 유도할 방침인데, 산문주차장은 사저와 1.8km가량 거리를 두고 있다. 노약자의 경우 걸어서 왕복하기 쉽지 않은 거리다.

마을 안길에서 만난 한 주민은 “봉하마을처럼 되는 건 생각도 하기 싫다”며 “마을에 산책로가 조성되고 있지만 사저 주변에는 인파가 모일 공간도 없고, 차량 통행도 힘든데 어떻게 그렇게 되겠느냐”고 말했다.



양산=최창환 기자 oldbay77@donga.com
양산=김화영 기자 r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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