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오전 일본 교토부 남부 우지시 우토로 마을. 천장에 낡은 선풍기가 달린 오래된 전철을 타고 교토역에서 30분쯤 남쪽으로 가면 도착하는 이 곳이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사람들로 북적였다.
한복을 입고 개관식에 참석한 우토로 재일교포 주민들은 이 마을 출신 동포 3세가 부르는 아리랑에 눈물을 글썽였다. 이 곳에서 나고 자란 강도자 씨(77)는 “평생을 이 곳에서 어렵게 살아 왔는데 이렇게 깔끔해지고 멋진 기념관까지 생겨 기쁘다”고 말했다.
● “한국이 싫었다” 한 순간에 불탄 마을
“집에 누워서 TV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타는 냄새가 나더라고. 창 밖을 바라보니 시커먼 연기가 치솟는데….” 우토로 마을에서 만난 재일교포 2세 정우경 씨(81)는 어제 일처럼 생생히 기억했다. “목조건물이라 활활 탔어. 급한 마음에 주민들이 수돗물을 부었지. 소방관이 출동하더니 빨리 피하라고, 위험하다고 해 정신없이 도망갔지.”
22세 일본인 남성 범인은 경찰에서 범행 이유로 “한국이 싫었다”고 밝혔다. 한국을 가본 적도, 아는 한국인도 없던 사람이었다. 그는 “한국인들이 불법 점유했다. 일본 세금으로 기념관을 짓고 집을 공짜로 준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과도 달랐지만 일본 우익들이 인터넷 게시판, 시위 등에서 퍼뜨린 혐한 주장이 현실 범죄로 나타난 것이라 일본 사회는 충격을 받았다.
● “우토로, 평화를 기리는 공간 되길”
상하수도조차 없던 마을은 한일 양국 민간단체 모금과 한국 정부 지원 등을 통해 말끔하게 단장됐다. 과거 판자를 덧대 지은 근로자 식당에서 살던 동포들은 한국 정부 등이 매입한 토지에 지은 시영아파트에 거주한다. 2018년 완공된 아파트에 40가구 68명이 입주했이고 내년 봄 준공될 다른 아파트에 12가구가 들어간다.
안자이 이쿠로(安齋育郞) 리쓰메이칸대 평화박물관 명예관장은 “이 곳이 가장 가까운 이웃인 한일 양국의 가교 역할을 해 역사를 배워가며 평화와 인권에 대해 생각하는 공간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교토=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