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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마을 우토로, ‘잿더미’ 방화현장 옆 평화의 공간 세웠다

입력 | 2022-05-01 13:11:00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지난달 30일 오전 일본 교토부 남부 우지시 우토로 마을. 천장에 낡은 선풍기가 달린 오래된 전철을 타고 교토역에서 30분쯤 남쪽으로 가면 도착하는 이 곳이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사람들로 북적였다.

한복을 입고 개관식에 참석한 우토로 재일교포 주민들은 이 마을 출신 동포 3세가 부르는 아리랑에 눈물을 글썽였다. 이 곳에서 나고 자란 강도자 씨(77)는 “평생을 이 곳에서 어렵게 살아 왔는데 이렇게 깔끔해지고 멋진 기념관까지 생겨 기쁘다”고 말했다.

일제강점기 일본군 비행장 건설에 동원된 조선인과 후손들이 살던 역사를 알리는 우토로평화기념관이 이날 공식 개관했다. 한국 대사관, 일본 지자체 관계자, 양국 주요 언론사 취재진 등 200여 명이 모여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최근 일본의 사회 문제인 ‘헤이트 크라임(증오범죄)’과 맞서 싸우는 상징적 공간으로도 떠올랐다.


● “한국이 싫었다” 한 순간에 불탄 마을

우토로 마을이 일본 전국의 관심을 모은 계기는 지난해 8월 30일 벌어진 방화사건이었다.

“집에 누워서 TV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타는 냄새가 나더라고. 창 밖을 바라보니 시커먼 연기가 치솟는데….” 우토로 마을에서 만난 재일교포 2세 정우경 씨(81)는 어제 일처럼 생생히 기억했다. “목조건물이라 활활 탔어. 급한 마음에 주민들이 수돗물을 부었지. 소방관이 출동하더니 빨리 피하라고, 위험하다고 해 정신없이 도망갔지.”

주택과 창고 7채를 태운 방화사건은 기념관에서 걸어서 5분 정도 떨어진 곳에서 벌어졌다. 까만 잿더미 사이에 앙상하게 휘어진 철 구조물이 쓰러질 것처럼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사고 현장이 지금도 그대로 남아있다.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기념관에 전시하기 위해 보관 중이던 전시물 50여 점이 방화로 소실됐다.

22세 일본인 남성 범인은 경찰에서 범행 이유로 “한국이 싫었다”고 밝혔다. 한국을 가본 적도, 아는 한국인도 없던 사람이었다. 그는 “한국인들이 불법 점유했다. 일본 세금으로 기념관을 짓고 집을 공짜로 준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과도 달랐지만 일본 우익들이 인터넷 게시판, 시위 등에서 퍼뜨린 혐한 주장이 현실 범죄로 나타난 것이라 일본 사회는 충격을 받았다.


● “우토로, 평화를 기리는 공간 되길”

우토로 조선인들은 사유지를 무단 점유했다는 일본 법원 판결에 따라 쫓겨날 위기에 처했지만 한국 정부가 설립한 재단과 우토로민간기금재단이 토지 일부를 사들이고 우지시가 주거개선 사업을 벌여 거주 공간을 마련했다. 다가와 아키코(田川明子) 우토로평화기념관 관장은 “평화를 기리는 공간으로, 특히 젊은 세대들이 흥미를 갖고 찾을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 만들어 가겠다”고 밝혔다.

상하수도조차 없던 마을은 한일 양국 민간단체 모금과 한국 정부 지원 등을 통해 말끔하게 단장됐다. 과거 판자를 덧대 지은 근로자 식당에서 살던 동포들은 한국 정부 등이 매입한 토지에 지은 시영아파트에 거주한다. 2018년 완공된 아파트에 40가구 68명이 입주했이고 내년 봄 준공될 다른 아파트에 12가구가 들어간다.

평화기념관에는 우토로 생활상을 보여주는 전시물과 일본 정부, 토지 소유주 등에 맞서 20년 넘게 저항한 역사가 담긴 소송 자료, 사진, 신문 기사 등이 전시됐다. 기념관 부지에는 우토로 동포들이 살던 목조 근로자 식당을 재현했다. 방문객과 주민들이 교류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했다.

안자이 이쿠로(安齋育郞) 리쓰메이칸대 평화박물관 명예관장은 “이 곳이 가장 가까운 이웃인 한일 양국의 가교 역할을 해 역사를 배워가며 평화와 인권에 대해 생각하는 공간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교토=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