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날 때 ‘성공’ 외치는 文 안쓰러워 대통령 직함 어울리지 않았던 분 대놓고 ‘우리 편’만 든 첫 집권자 오히려 우리가 잊고 싶지만…
박제균 논설주간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가 9일까지이니 재임 중 쓰는 마지막 칼럼이다. 본 칼럼이 격주로 나가기 때문이다. 일주일 뒤 청와대를 나오는 대통령을 비판하려니 마음이 불편하다. 하지만 떠나는 대통령도 넘어서는 안 될 선이 있다. 문 대통령은 그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다.
문 대통령은 지난주 청와대 기자간담회와 jtbc 인터뷰에 많은 말을 쏟아냈다. 주말엔 청와대 국민청원의 마지막 답변자로 나서 같은 주장을 늘어놓기도 했다. 5년 임기 중 정상회담 때를 빼고 기자회견과 ‘국민과의 대화’를 합쳐 고작 10번 정도 언론 앞에 섰던 대통령이다. 임기 중에 자주 등장했으면 좋았으련만 ‘떠날 때는 말없이’는커녕 떠날 때 왜 그리 할 말이 많은가. 그것도 퇴임 후엔 ‘잊히고 싶다’던 분이.
말의 내용은 더 기막히다. 거의 다 자화자찬 내로남불 궤변이거나 아니면 후임자 깎아내리기였다. 국정(國政) 실패를 조금이라도 시인하고 후임자를 배려했다면 떠나는 뒷모습이 조금은 더 크게 보였을 터. 더불어민주당은 ‘검수완박’으로 폭주하는 사이, 홀로 여기저기서 ‘문재인 정부는 성공했어요’를 외치는 모습이 안쓰럽기까지 하다.
대한민국 역사를 돌아볼 때 권한대행 같은 임시직을 빼고 대통령이라는 직함이 가장 어울리지 않았던 한 분을 꼽으라면 단연 문 대통령일 것이다. 그는 5년이 되도록 국가와 국민이라는 큰 크림을 보지 못했다. 오로지 ‘우리 편’을 주류세력으로 교체하겠다는 ‘세상 바꾸기 게임’에 몰두했다.
그는 집권자가 돼서도 대놓고 우리 편만 든 사상 첫 대통령이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은연중에 지지층을 의식한 정책을 편 사람은 있어도 문 대통령처럼 노골적으로 상대편에 적의를 표시한 분은 없었다. 임기 말인 지난주까지도 상대편은 ‘저쪽’, 우리 편은 ‘이쪽’ ‘우리 편’으로 부르며 금을 그었다.
그럼에도 문재인의 세상 바꾸기 게임은 실패했다. 성공했다면 윤석열이 대통령에 당선됐겠나. 남은 건 두 동강 난 대한민국이다. 우리 편을 열광케 한 대통령은 비교적 높은 지지율로 물러날지 몰라도, 그 자신은 반쪽만의 대통령인 ‘반(半)통령’으로 역사에 남게 됐다.
그가 우리 편의 지지를 잃지 않기 위해 구사한 언어는 ‘유체이탈 화법’이란 신조어를 남겼다.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The buck stops here)’는 자세로 임해야 할 대통령이 해서는 안 될 비겁한 언어로 대통령사(史)에 남을 만하다.
문 대통령은 원래 정치를 할 의사가 없던 분이었다. 그런 사람을 친노(親盧) 운동권 세력이 ‘기획상품’으로 내세워 대통령으로 만들었으나 의사는 물론 능력도 없음이 드러난 것이다. 그 결과가 참담한 국정 실패다. 무비판적 팬덤을 키워 정치를 병들게 하고 공정과 정의, 상식과 언어의 경계선을 허물어 사회의 건강을 좀먹은 건 보너스다.
이제 8일밖에 남지 않은 임기. 측근인 김경수 전 경남지사 사면이라도 자제해 마지막이라도 대통령다움을 보였으면 한다. 그러나 문 대통령에 관한 한 ‘불안한 상상은 항상 현실이 되고’ ‘뭘 상상해도 그 이상’이었으니 별 기대는 하지 않는다. 그는 퇴임 후 “잊힌 사람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지만, 도리어 잊고 싶은 사람은 우리다. 하지만 어쩐지 그러지 못할 거란 불안한 예감이 든다.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