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부 ‘우토로 평화기념관’ 개관
지난달 30일 일본 교토부 우지시 우토로 평화기념관에서 개관식이 열렸다. 우토로에 거주하는 재일교포 주민들과 한국대사관, 일본 지자체 관계자 등 200여 명이 참석했다. 이날 개관식에서 재일교포 3세가 부르는 아리랑이 울려 퍼지자 주민들은 눈물을 글썽였다. 우지=이상훈 특파원 january@donga.com
지난달 30일 일본 교토역에서 천장에 낡은 선풍기가 달린 오래된 전철을 타고 30분쯤 남쪽으로 가니 ‘재일동포 차별의 상징’인 우토로 마을이 있는 우지시가 보였다. 이날 오전 마을에는 아리랑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일제강점기 일본군 비행장 건설에 강제동원된 조선인과 후손들이 살던 마을의 역사를 알리는 우토로 평화기념관이 공식 개관하는 날이었다.
한복을 입고 개관식에 참석한 우토로 재일교포 주민들은 이 마을 출신 동포 3세가 부르는 아리랑에 눈물을 글썽였다. 우토로에서 나고 자란 강도자 씨(77)가 기자에게 말했다. “여기에 산 것부터가 차별이죠. 평생을 어렵게 살아 왔는데 우토로가 이렇게 깨끗해지고 기념관까지 생겨 기쁩니다.”
○ ‘81년 차별의 역사’ 고스란히 재현
우토로 평화기념관에는 재일교포 주민들이 우토로를 지키기 위해 일본 정부 등을 상대로 투쟁한 각종 기록이 전시돼 있다. 1980년대 주민과 시민단체가 제작한 ‘우리의 삶의 터전, 우토로에 살리라’ 포스터 등 다양한 활동상이 눈에 띈다. 우지=이상훈 특파원 january@donga.com
기념관 2층에는 재일교포 1세였던 김군자 할머니(2014년 사망)의 집이 예전 모습대로 재현됐다. 부뚜막과 식탁, 달력뿐 아니라 비만 내리면 무너지는 천장을 받치기 위해 설치했던 철기둥도 그대로 가져왔다. 생전에 김 할머니는 “여기에 사는 것 자체가 (차별에 맞서는) 저항운동”이라며 한국 정부에 지원을 호소했다.
○ “우토로, 한일 평화의 장이 되길”
우토로는 일본이 1941년 교토 군사비행장 건설을 위해 조선인 노동자 1300여 명을 동원하며 만든 집단 거주지다. 광복 후에도 임금 체불 등의 사정으로 귀국하지 못한 한국인들이 가난과 차별 속에서 살아온 곳이다. 최악의 거주 환경에서 버텨온 주민들은 2000년 ‘사유지를 무단 점유했다’는 일본 법원 판결에 따라 쫓겨날 위기에 놓이기도 했다. 이후 한국 정부가 설립한 재단과 우토로민간기금재단이 토지 일부를 사들이고 우토로를 관할하는 우지시가 주거 개선 사업을 벌여 거주 공간을 마련했다. 상하수도조차 없던 마을은 말끔하게 단장됐다. 판자를 덧대 지은 근로자 식당에서 살던 동포들은 한국 정부 등이 매입한 토지에 지은 시영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다. 2018년 완공된 아파트에 40가구 68명이 입주했고, 내년 봄 준공될 다른 아파트에 12가구가 들어간다. 20년 전 320여 명이던 주민 수는 현재 100여 명으로 줄었다. 상당수가 홀로 사는 노인들이다. 강경남 할머니(95)가 2020년 별세한 이후 한인 1세대는 아무도 남지 않았다.
다가와 아키코(田川明子) 우토로 평화기념관 관장은 “평화를 기리며 전파하는 공간이 됐으면 한다. 특히 한국과 일본의 젊은 세대들이 흥미를 갖고 찾을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 가겠다”며 “아픔과 차별의 상징이던 우토로가 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만남의 장이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우지=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