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층 아파트가 에워싼 도심 중앙의 옛 역사(驛舍) 잔디밭에서 공연할 수 있다니….”
토요일이었던 지난달 30일 오후 부산 동구 좌천동 옛 부산진역 광장. 부산에서 활동하는 싱어송라이팅 그룹 ‘오느린윤혜린’의 버스킹(길거리공연)이 열렸다. 길 가던 이들은 감미로운 음악에 홀린 듯 걸음을 멈추고 스태프가 제공한 돗자리를 깔고 잔디밭에 앉았다.
10여명에 그쳤던 관중은 50분의 공연이 끝날 무렵엔 30여명까지 늘었다. “기타 얼마주고 샀나요?”란 관중의 물음에 보컬은 “안 그래도 자랑하고 싶었던 악기”라며 웃으며 화답하는 등 가수와 관객이 마음껏 소통하는 장이 됐다. 지난달 23일 처음 시작돼 이날로 세 번째인 버스킹은 7월 3일까지 매주 토·일요일 오후 5시에 열린다.
●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한 옛 부산진역사
KTX 개통 등으로 2005년 4월 폐쇄된 뒤 17년 동안 활용방안을 찾지 못해 애물단지였던 옛 부산진역이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다. 부산 동구는 시비 31억 원과 구비 7억 원을 투입해 옛 부산진역을 개보수한 복합문화공간 ‘문화플랫폼 시민마당’을 지난달 22일 개소했다.시민마당은 크게 상설전시관과 소규모 도서관, 1인 미디어 스튜디오, 커피박물관 등으로 나뉘어져 있다. 커피박물관에는 익명의 시민이 기부한 로스터와 그라인더 등 커피 관련 물품 2000여 점이 전시돼 있다. 동구는 한국철도공사(코레일)와 지난해 2월 옛 역사와 광장 등 5348㎡ 철도부지의 임대계약을 맺고 개보수를 벌였다.
부산진역사 안으로 들어가 회색 커튼을 젖히자 1층 벽면에 약 1.5m 간격으로 액자가 걸려 있었다. 그림책 ‘배고픈 애벌레’로 널리 알려진 에릭 칼 같은 세계적인 동화작가의 일러스트 작품 50점이었다. 2층에는 그림책 안에 들어온 것처럼 느껴지게 하는 ‘동화책 AR 증강현실’ 체험 코너도 마련돼 있다. ‘볼로냐 그림책 일러스트 특별전’의 모습이다.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매년 봄 열리는 세계 최대 규모의 어린이 도서박람회인 ‘볼로냐 아동 도서전’에 출품했던 우수 작품을 부산시민들이 볼 수 있게 한 것이다.
전시회 기획을 총괄한 정소민 부산 동구청 주무관은 “매일 200명 넘는 이들이 전시장을 다녀가며 초등학생 단체관람객이 특히 많다”면서 “어려운 현대미술이 아니라 남녀노소 누구나 즐기도록 쉬우면서도 의미가 있는 작품을 이곳에서 전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 “부산의 대표 문화공간으로 기대”
부산진역은 100년 가까이 경부선과 경전선, 동해남부선을 타고 부산으로 오거나 전국 각지로 흩어지는 이들이 거쳤던 역사적인 공간이다. 부산진역사는 1920년대 이 자리에 설치된 것으로 추정된다. 역사 폐쇄 이후 2012년 ‘부산 비엔날레’ 전시를 위해 일회성으로 활용된 적은 있지만 상시 활용방안을 마련치 못해 사실상 방치돼왔다. 한때 인근 국가철도공단 부지에 18층 규모의 오피스텔 건립이 추진되기도 했으나 난개발을 우려한 동구가 건축심의를 반려해 계획이 무산되기도 했다.코레일 소유의 옛 역사를 주민 공간으로 바꾼 사례는 부산에서 또 있다. 해운대구는 2013년 동해남부선 복선전철사업에 따라 문을 닫았던 옛 해운대역사를 개보수해 청년예술인 창업공간인 ‘해운대 아틀리에 칙칙폭폭’으로 지난달 개관했다. 코레일은 옛 송정역사는 해변열차를 운행 중인 기업의 관광시설로 조성돼 운영 중이며 옛 좌천역사는 근대역사 관광 자원으로 활용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김화영 기자 r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