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한 친구 계부에게 성폭행당한 뒤 지난해 5월 극단적인 선택을 한 충북 청주 여중생 A양의 유족이 2일 상당구 성안길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2022.5.2/© 뉴스1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희 아버지는 무죄입니다. 제발 무죄 판결을 내려주세요.”
친족 성폭력 범죄 피해자로 경찰 조사를 받다 극단적인 선택을 한 충북 청주 여중생이 남긴 유서에 적힌 글귀다(뉴스1 5월 1일 보도 참조). 숨진 여중생은 자신에게 몹쓸 짓을 한 혐의로 입건된 계부를 끝까지 감쌌다.
왜 그랬을까. 이후 1심 재판부가 피고인이 의붓딸을 상대로 유사 성행위를 하고 강제 추행했다고 인정한 점을 고려하면 쉽게 납득가지 않는 대목이다.
A양 유족이 확보한 피의자 신문조서를 보면 피고인은 사건 당일 방에 들어가 무엇을 했냐는 수사관 질문에 “???(A양)가 방바닥 카펫 구석 뒷면에 토를 해놓아서 닦았고, 제 딸을 깨워서 함께 ???(A양)를 화장실로 데려가서 토하게 했다”고 진술했다.
A양 유족은 해당 진술 중 ‘제 딸을 깨웠다’는 부분을 유심히 살펴야 한다고 했다.
피고인은 1심 재판이 끝나기 직전까지 비슷한 주장을 되풀이했다.
친한 친구 계부에게 성폭행당한 뒤 지난해 5월 극단적인 선택을 한 충북 청주 여중생 A양이 생전 친구와 나눈 메신저 대화 내용. A양은 대화에서 피고인 의붓딸이 사건 증언을 해주지 않는 것에 서운함을 토로하고 있다.2022.5.2/© 뉴스1
A양 유족은 “피고인은 A양이 강간당했다고 주장하는 시간에 의붓딸이 깨어 있었다고 한다”면서 “이 말에는 ‘의붓딸이 깨어 있었는데 친구가 강간당하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었겠느냐’라는 뜻이 담겼다”고 지적했다.
유족 측은 피고인 의붓딸은 목격자로 지목된 순간부터 난처한 처지에 놓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원인으로는 계부와 함께 생활하면서 경제·심리적으로 종속돼 독립적이고 합리적인 의사 표현이 어려운 데다 성범죄 피해를 주장하는 친구 역시 저버릴 수 없었던 심리 상태를 꼽았다.
피고인 의붓딸이 놓인 처지를 가늠해볼 수 있는 근거로는 생전 행동을 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A양은 반대로 피고인 의붓딸에게 지속해서 증언을 요청한 정황이 나온다.
A양은 한 친구와 메신저 대화에서 피고인 의붓딸을 지칭하면서 “자기도 아빠한테 당했다고 해놓고 갑자기 말 바꾼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피고인 의붓딸도 성폭행 사실을 알고 있어서) 내가 증거 따서 신고하려고 계속 만나서 물어봤는데 입을 안 연다. 깨어 있었으면서 계속 자고 있었다고 한다”고 서운한 감정을 드러냈다.
A양 유족은 피고인 의붓딸이 계부와 친구 모두에게 신의를 지키려는 수단으로 죽음을 선택했다고 보고 있다.
유족 측은 “피고인이 의붓딸에게 ‘네가 깨어 있었으니 진실을 말해달라’는 취지로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진실을 밝혀 계부를 감옥에 보낼 수도, 거짓을 말해 친구를 절망에 빠뜨릴 수도 없던 처지에서 갈등하다가 유서를 쓰고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피고인 의붓딸은 유서에 계부가 자신에게 저지른 성범죄는 무죄라고 적었으나 A양이 본 피해와 관련해선 언급하지 않는 방법으로 친구로서의 신의를 지켰다”고 덧붙였다.
앞서 지난해 5월12일 청주시 오창읍 창리 한 아파트에서 여중생 2명이 극단적인 선택을 해 숨졌다.
두 여학생은 숨지기 전 경찰에서 성범죄와 아동학대 피해자로 조사를 받았다.
가해자는 두 학생 중 한 명의 계부로 1심에서 징역 20년을 선고받았다.
(청주=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