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군대가 우크라이나 점령 지역에서 농기계와 곡물을 대량으로 수탈하고 있다. 침공 초기 일부 병사가 편의점에서 먹을 것을 훔치거나 가정집 학교에서 고가 물품을 빼앗은 러시아군이 군 차원에서 약탈하는 정황이 포착된 것이다.
1일(현지 시간) 미국 CNN방송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남부 멜리토폴시 농기계 판매점에서 한 대 30만 달러(약 3억8000만 원)짜리 콤바인 수확기를 포함해 모두 500만 달러(약 63억2500만 원) 상당의 농기계를 훔쳐갔다. 러시아군은 전쟁 초기인 3월초부터 이 도시를 점령 중이다.
익명의 소식통은 CNN에 러시아군이 이 판매점에서 수확기 두 대, 트랙터 및 파종기 한 대씩을 가져간 뒤, 몇 주에 걸쳐 남은 농기계 27대마저 모두 빼앗았다고 전했다. 농기계 수탈에는 화물칸이 평평한 트럭이 동원됐다. 이 트럭에는 하얀 페인트로 알파벳 ‘Z’가 적혀 있었다. Z는 러시아 군용차와 탱크, 장갑차에 자주 등장하는 러시아군 식별 표식이다. 러시아 내부에서는 우크라이나 침공을 지지하는 상징으로도 쓰인다. 한 그룹만이 아니라 여러 그룹이 아침저녁으로 이런 도둑질을 저지른다고 이 소식통은 밝혔다.
러시아군이 멜리토폴 지역에서 사일로(곡식 저장소)에 보관된 곡물을 훔친 정황도 나왔다. 한 소식통은 “러시아군이 현지 농민에게 이익을 반반으로 나누자고 제안하지만, 곡물용 엘리베이터나 항구가 어느 곳도 제대로 가동되지 않아서 곡물을 운반하지 못 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주 멜리토폴 시장은 곡물을 가득 싣고 멜리토폴을 떠나는 트럭 호송단 동영상을 올리기도 했다.
CNN방송은 “지난 몇 주간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주거 지역 약탈을 넘어서 농기계와 곡물, 건축자재들까지 빼앗아가고 있다는 보고가 늘고 있다”며 “러시아군의 운송망이 절도에 활용되는 등 점점 조직화되고 있다”고 전했다.
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