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률 한국항공우주연구원장
누리호 2차 발사 D-44(5월 2일 현재). 이상률 한국항공우주연구원장은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시작했는데 이제는 누리호에 이어 달 궤도선을 보낼 수 있을 정도로 우리 기술이 성장했다”며 “8년 후(2030년)면 우리 손으로 만든 착륙선이 달에 내리는 것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이진구 기자
《지난해 10월 21일, 순수 우리 기술로 제작된 ‘누리호’가 개발 착수 11년 7개월 만에 마침내 하늘로 날아올랐다. 비록 마지막 단계에서 궤도 진입은 못 했지만, 실패라기보다는 ‘미완의 성공’이라는 평가가 더 많다. 그 누리호가 다음 달 15일 2차 발사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이상률 한국항공우주연구원장은 “1차 발사 때 나타난 문제점 외에 다른 문제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며 “누리호에 이어 8월 달 궤도선까지 성공하면 우리도 민간 주도 우주 개발 시대로 넘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작년 10월 1차 발사는 왜 실패한 건가.
“3단 발사체 안의 헬륨 탱크 고정 장치를 설계할 때 실제 비행 시 발생하는 부력을 생각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비행 중 탱크가 떨어져나가면서 내부에 충격을 줬고, 이로 인한 균열로 산화제가 누출되면서 엔진이 일찍 꺼졌다.”
―실제 비행 시 발생하는 부력을 고려하지 못한 것은 1, 2단 발사체도 마찬가지 아닌가. 그건 문제가 없었는데….
―실제 비행 경험 부족 때문에 생긴 문제인데, 미국항공우주국(NASA) 출신 같은 외국 인력을 스카우트하거나 수시로 자문했다면 사전에 발견할 수 있지 않았을까.
“설계 초기에는 자문을 했다. 그런데 개발이 본궤도에 오른 상태에서도 자문을 하면 그 과정에서 우리 독자 기술이 외부에 알려지는 문제가 생긴다. 정신없이 바쁜데 개발자들이 그때마다 외국에 다녀오기도 힘들고….” (전화나 이메일로는 안 되나?) “하하하, 보안 문제도 있고, 또 로켓 자문이 전화 몇 마디로 해결되는 간단한 게 아니니까. 외국 인력 스카우트는 계약 조건 맞추기도 쉽지 않지만 그들은 계약기간이 끝나면 돌아가기 때문에 앞서 말한 대로 우리 기술이 유출되는 문제가 있다.”
―누리호가 성공하면 세계에서 7번째로 1t 이상의 실용급 위성을 발사한 나라가 된다고 하는데 1t의 의미가 뭔가.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 1호(1957년)는 발사에 성공했다는 의미는 있지만 크기(83kg)가 작아 인공위성으로서의 기능은 거의 하지 못했다. 제 기능을 하려면 관측 등 필요한 각종 장비를 탑재할 만큼의 크기가 필요하고, 그러려면 1t 이상은 돼야 한다. 제대로 된 기능을 하는 인공위성을 독자적으로 쏘아 올릴 수 있는 7번째 나라가 된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달 탐사 궤도선을 왜 스페이스X사 로켓에 실어 보내는 건가. 누리호로 보내면 더 의미가 깊을 텐데.
“원래는 그렇게 하려고 했다. 2007년 처음 달 탐사 계획을 만들 때 나도 참여했는데… 그때 2020년 달 궤도선, 2025년 달 착륙선을 보내기로 계획했다. 그래서 그러면 궤도선과 착륙선을 어떤 방법으로 달에 보내느냐, 외국 로켓을 써도 되냐 이런 논의를 하고 있는데 당시 교육과학기술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굉장히 명확하게 ‘당연히 우리 손으로 만든 발사체로 보내야 한다’고 했다.” (충분히 생각할 수 있는 판단 아닌가.) “그래서 ‘OK’ 하고 사업이 시작됐다. 그런데 2014년인가? 처음에는 없던 계획이 갑자기 끼어들어 왔다.”
“2020년 달 궤도선 발사에 앞서 시험용 궤도선을 발사해 보자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이건 시험용이니까 외국 발사체로 쏴도 된다고 했다.” (우주개발 프로젝트가 갑자기 툭 던져도 다 해낼 수 있는 일은 아니지 않나.) “그러다 보니 당초 계획보다 막 늦어지게 됐다. 그러니까 2018년에 계획을 또 바꿨다. 궤도선은 없애고, 달 착륙선은 2030년으로 미룬 거다.” (8월 발사하는 게 궤도선인데 궤도선을 없앴다니?) “시험용 궤도선, 궤도선, 착륙선에서 시험용 궤도선과 착륙선이 남은 거다. 그런데 궤도선이 없는데 시험용 궤도선이 있으면 좀 그러니까 우리 명칭에서는 ‘시험용’이란 말을 뺐다.”
※한국형 달 궤도선(KPLO·Korea Pathfinder Lunar Orbiter)은 달 100km 고도를 비행하며 달을 관측하는 무인 탐사선이다.
지난해 10월 21일 누리호 1차 발사 모습.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우주개발 사업을 시작했는데 그 헤딩으로 달까지 가게 된 셈이다. 정말 짧은 시간에 엄청난 발전을 이뤘는데 예를 들면 달 궤도선을 4개월 반 동안 우리가 조종해서 달에 보내는 것도 그렇다.” (아폴로 11호는 3일 만에 갔는데 직접 가는 게 아닌가?) “그렇게 직접 가는 방법도 있고, 태양 달 지구의 중력을 이용해 가는 방법도 있다. 스페이스X사 로켓의 역할은 우리 달 궤도선을 우주에 띄워주는 것까지다. 이건 발사 20분 만에 끝난다. 그다음부터는 우리 관제센터에서 궤도선을 조종해 달로 보내는데, 먼저 태양 쪽으로 보낸 뒤 태양과 달의 중력, 추진기를 이용해 조금씩 방향을 틀고 잡으면서 달에 간다. 그 기간이 4개월 반 정도가 걸린다. 기술은 많이 발전했다. 그런데 진정한 민간 우주시대를 열려면 지금과는 마인드가 달라져야 한다.”
“과거처럼 우주개발을 정부가 아닌 스페이스X 같은 민간기업이 주도하는 시대를 뉴 스페이스(New Space)라고 한다. 민간 우주개발의 특징은 스스로 아이디어를 내고 펀딩을 받아 사업을 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뉴 스페이스 시대를 열려면 정부가 더 많은 돈을 민간기업에 내려보내야 한다고 한다. 이미 정해진 국가 예산을 관련 기업이 나눠 갖는 게 무슨 뉴 스페이스인가. 일론 머스크처럼 기존의 틀을 완전히 깨는 과감한 혁신과 아이디어 없이 정부가 돈만 내려보내는 식으로는 진정한 민간 우주시대를 열 수 없다.”
―머스크가 어느 정도나 틀을 깼기에….
“예를 들면… ‘스뎅’으로 우주선을 만들었다.” (스뎅? 냄비나 식칼 만들 때 쓰는 스테인리스스틸을 말하는 건가.) “그 ‘스뎅’ 맞다. 기존 항공우주 분야에서는 누구도 ‘스뎅’으로 우주선을 만들 생각을 하지 못했다. 우주선을 만들 때 중요한 게 비행체 무게다. 그래서 가능한 한 가볍게 하기 위해 알루미늄 합금이나 탄소 복합재 같은 소재를 쓰는데 머스크는 스테인리스스틸을 썼다. 왜 기존에는 생각도 안 했냐면 스테인리스스틸이 알루미늄에 비해 3배 이상 무겁기 때문이다.”
―그런데 머스크는 왜….
“무엇보다 값이 엄청 싸다. 열도 더 잘 견디는데 반면에 또 용접도 쉽다. 더군다나 더 튼튼하다. 엔진 기술만 확보할 수 있으면 ‘스뎅’이 훨씬 더 장점이 많은 거다. 그러다 보니 결과적으로 엔진도 훨씬 성능이 좋은 걸 만들어내게 됐다. 또 전통적인 우주개발 방식에서는 사고가 나면 조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모든 절차가 중단됐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많이 걸리는데 스페이스X는 원인 분석과 재시도를 거의 동시에 진행했다. 덕분에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지만 개발 시간도 굉장히 단축했다.”
※스테인리스스틸은 탄소섬유 가격의 2%정도라고 한다. 머스크는 이것이 스타십 디자인에서 가장 훌륭한 결정이라고 했다.
―새 정부가 ‘항공우주청’을 신설할 계획이다. 그런데 우리는 앞서 말한 기술과 정책의 혁신보다 청사를 어디에 두느냐에 더 관심이 있는 것 같은데….
“미국 NASA 본부는 워싱턴에 있다. 흔히 영화에서 많이 보는 미국 휴스턴 관제센터(존슨 우주센터)는 텍사스, 케네디우주센터는 플로리다에 있고…. 항공우주청은 행정본부인데, 그게 제작업체들이 밀집해 있는 곳에 있다고 큰 도움이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NASA 유관기관들은 연구를 담당하는 제트추진연구소는 캘리포니아, 고더드 우주비행센터는 메릴랜드주, 마셜 우주비행센터는 앨라배마주 등 전국에 산재해 있다.
―40년 가까이 우주개발 분야에 있는데 아쉬운 점이 있나.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지만 우리가 대체적으로 추격형 대형 프로젝트를 많이 하다 보니 30, 40년 뒤를 준비하는 게 부족하다. 예를 들면 누리호 사업이 벌써 12년째인데 이렇게 큰 프로젝트 중심으로 인력과 예산이 묶이다 보면 아무도 가지 않은 길, 지금은 생각도 못 하는 것을 고민하기가 쉽지 않다. 당장은 써먹지 못하더라도 수십 년 뒤를 보며 고민하고 연구하는 투자가 필요하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