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자포리자의 피란민 접수소에서 한 남성이 아들과 재회해 포옹하고 있다. 아이와 아이 엄마는 앞서 수천 명의 우크라이나인과 함께 마리우폴에서 탈출했다. 자포리자=AP/뉴시스
우크라이나군의 최후 항전 중인 남동부 마리우폴에서 두 달 넘게 러시아군에 고립돼 있다 최근 탈출한 시민들이 끔찍했던 피신 상황을 전하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를 비롯한 외신에 따르면 2일(현지 시간) 마리우폴에서 탈출한 시민 100여 명은 우크라이나 군이 통제하는 자포지라 난민센터에 도착했다. 어린 아들과 함께 탈출한 옐레나 기베르트 씨는 “고립된 주민들이 극단적 선택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며 “마리우폴은 절망뿐”이라고 토로했다.
식량을 빌미로 러시아에 충성 맹세를 강요한 정황도 드러났다. 기베르트 씨는 “매일 오전 6시 러시아군이 나눠주는 식량을 배급받기 위해 줄을 서야 했다”며 “식량을 받으려면 먼저 러시아 국가(國歌), 그 다음은 (친러시아 분리주의 반군이 장악한) 도네츠크인민공화국 국가를 들어야 했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탈출 과정에서 러시아군이 일종의 사상 검증을 했다고 밝혔다. 자포노바 씨는 “검문소에서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에 영광을’이라고 외치며 우리 반응을 살폈다”면서 “‘(우크라이나) 영웅들에게 영광을’이라고 외쳤다면 끝이 분명 좋지 않았을 것”이라고 전했다.
유엔과 국제적십자위원회(ICRC) 협조를 받아 이날 이뤄지기로 예정된 추가 민간인 탈출은 러시아군 폭격이 재개되는 등 상황이 악화돼 진행되지 않았다. 현재 아조우스탈 제철소에는 민간인 100여 명이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