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다니구치 마사아키 ‘인질의 낭독회’
이정향 영화감독
2010년의 여름. 남미 대륙의 깊은 산속을 지나던 여행사의 승합차가 반정부 게릴라에게 납치된다. 관광객과 가이드까지 총 6명, 모두 일본인이다. 반정부군은 인질극을 벌이며 정부와 협상을 하지만 100일이 넘도록 진전이 없자 인질도, 인질범도 한계에 달한다. 죽음에 대한 불안이 가중되던 중, 인질들은 우연한 계기로 자기들만의 낭독회를 갖는다. 남기고 싶은 이야기를 써서 읽기로 한 건데, 이들은 유서를 쓰는 대신 약속이나 한 듯이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인상적인 사건들을 고른다. 제3자가 보면 무척 사소하고 볼품없는, 사건이라고도 하기 어려운 순간의 기억이지만 인질들은 서로의 심정에 공감하며 울고, 웃는다. 남미에서 일하는 남편을 만나러 온 주부, 사업차 출장 온 사장, 이민 간 조카의 결혼식을 보러 온 고모 등등 인질들은 모두 평범했고, 이들이 가장 아끼는 기억은 화려하지도 요란하지도 않았다.
인생은 순간의 연속이다. 인질들이 낭독의 소재로 택한 기억은 자신을 더 나은 미래로 이끌어준 고마운 순간들이었다. 그 당시엔 아픔과 절망의 시간이었을지라도. 한 사람의 인생이 시련과 고통으로만 점철될 리는 없다. 분명 보석 같은 순간들이 존재한다. 보물찾기 놀이처럼 어딘가에 분명히 보물이 숨어 있다는 걸 믿기만 해도 우리의 일상은 자주 반짝일지 모른다.
인질들은 죽음을 예견하면서도 지금의 자신을 만들어준 일등공신인 그 사소한 순간에 감사한다. 또한 그 순간을 만들어준, 보이지 않는 수많은 인물에게도 감사하며 자신의 인생이 축복이었음을 깨닫는다. 어떤 내일을 맞이할지라도 오늘을 원망으로 흘려보내서는 안 된다는 걸, 지금이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히 다뤄야 할 때란 걸 잘 알고 죽음이 다가오는 마지막 순간까지 정성을 다한다. 실화는 아니다. ‘박사가 사랑한 수식’으로 유명한 오가와 요코의 동명소설이 원작이다.
이정향 영화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