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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 사용 아동의 소망 “어린이날 온전히 즐겼으면…”

입력 | 2022-05-04 21:53:00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더 빨리, 더 빨리!” “청팀, 이겨라”

서울 마포구에 있는 한국우진학교(교장 정동일)에선 4일 3년 만에 ‘어린이날 큰잔치’가 열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2019년 이후 중단됐다가 3년 만에 야외와 체육관에서 행사가 마련된 것. 박 터뜨리기, 공 높이 던지기 등 오랜만에 열린 행사에 초등학생들은 한껏 들뜬 모습이었다.

아이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 뽀로로 등 인기 캐릭터로 분장한 교사들은 학생들의 웃음에 몸을 더 크게 움직였고, 학생들과 어울려 함께 춤을 추며 활기 찬 시간을 보냈다.

운동회의 꽃인 계주 경기가 시작되는 순간. 출발선 앞에 휠체어와 보행보조기가 섰다. 지체장애 국립특수학교인 우진학교는 전교생 대부분이 휠체어를 탄다.
● 장애인콜택시 배차시간이 등하교시간 정해
이날 행사가 시작된 지 1시간이 지났을 때까지도 휠체어를 탄 학생들의 등교가 불규칙하게 이어졌다. 대부분 장애인 콜택시를 이용해 학교에 오는데 배차 시간이 들쭉날쭉하다 보니 등교가 늦어진 것.

우진학교는 전교생이 185명이다. 45인승 셔틀 버스가 4대나 있지만 34명만 이 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휠체어에 탄 채로 버스에 오르다보니 한 대에 최대 8명만 탈 수 있어서다. 노후화된 버스도 있는 탓에 학부모들은 행여나 휠체어 리프트가 고장나 아이가 등교를 못할까봐 늘 걱정이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공진하 우진학교 교사는 “휠체어를 탄 학생은 대형 차량이 아니고는 사실상 등하교가 힘들어 장애인 콜택시를 이용하는 학생이 많다”고 말했다. 과거에는 2시간 넘도록 택시가 잡히지 않아 현장학습에 참여하지 못하는 학생도 있었다고 한다.

반대로 하교 시간에 맞춰 장애인 콜택시를 호출하면 예상보다 빨리 오는 경우도 있다. 이날도 행사 중 조퇴하는 학생이 간간이 보였다. 배차 완료 후 호출을 취소하면 10분간 호출을 할 수 없고, 언제 다시 배차가 될지 몰라 일단 탈 수밖에 없다는 것.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올해 3월 기준 서울의 장애인콜택시는 634대. 서울시설공단에 등록된 이용대상자는 지난해 말 기준 2만 5941명이다. 학생들의 등교가 이뤄지는 오전 8시 평균 택시 대기시간은 지난해 기준 42분. 수업을 마치고 재활치료를 받으러 병원에 가는 오후 4시에는 58분까지 대기시간이 늘어난다. 최근 서울의 ‘택시 대란’이 이들에게는 일상인 셈이다.

자가용 등하교도 쉽지는 않다. 휠체어 때문에 미니 밴처럼 큰 차량이 필요하지만 그마저도 휠체어를 분해하지 않은 채로 싣고 다니려면 차량 개조가 필수다. 학부모 배경민 씨(51)는 “휠체어와 아이를 직접 차에 들어올리다가 고관절이 탈골된 적이 있다”며 “결국 1000만 원이 넘는 비용을 들여 차량을 개조했다”고 말했다.

또 차량들의 크기에 반해 노후화된 학교 주차장의 층고가 너무 낮다는 문제점도 있는데, 예산이 부족해 공사를 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 중증장애인용 화장실 없고 이동 어려워 ‘도전’이 된 현장학습
장애가 심한 학생이 많다 보니 물총이나 비눗방울을 이용한 간단한 놀이를 하려고 해도 만반의 준비가 필요하다. 손가락 움직임이 자유롭지 않아 물총 방아쇠를 당기기 어려운 경우가 상당수 있기 때문이다. 이날 행사를 위해 전날 수업을 마친 20여명의 선생님이 학교에 남아 물총과 비눗방울 장난감에 보조기구를 직접 납땜해 연결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이번 어린이날 행사는 학교 내에서 이뤄졌지만 코로나19 전에는 현장학습을 가기도 했다. 하지만 가까운 거리로 가는 현장학습도 학생들에게는 도전이라고 한다. 지하철 역사 승강기에는 한 번에 휠체어 1, 2대만 탈 수 있어 학급 전체가 이동하기 어렵고 저상버스도 운행시간이 일정치 않아 타기가 쉽지 않다는 것.

실제로 현재 서울 지하철 15개 역사의 17개 승강기가 국토교통부 적정 기준인 ‘가로·세로 15m’에 미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저상버스 도입률도 70%에 못 미친다. 서울시는 빠른 시일 내 개선을 약속한 상태다.

학교 셔틀버스가 있긴 하지만 주차가 난관이다. 휠체어를 탄 학생들이 리프트로 승·하차를 하기 때문에 차를 길가에 오래 주차해야 한다. 가장 기본적인 화장실도 문제다. 학부모 배 씨는 “기저귀를 사용하는 지체장애인도 있는데 취학아동의 무게와 크기에 맞는 기저귀 교환 받침대가 있는 공중화장실은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도 장애인들의 외출을 꺼리게 만든다. 학부모 A 씨는 “몇 년 전 어린이날 유원지에 갔는데 면전에서 ‘휠체어 타고 여길 왜 와’라는 소리를 들었다”며 “이런 일을 몇 차례씩 겪으면 집에서 짜장면 시켜먹는 어린이날을 보내게 된다”고 토로했다.

2019년 교사 공 씨와 학생들은 현장학습 차 지하철을 타고 서울 마포구 망원시장에 갔다. 학생들에겐 지하철을 타는 것도 ‘특별한 체험’이어서 단 2개역만 이동하는 데도 학생들은 기쁨의 탄성을 질렀다. 공 씨는 “장애인을 존중하는 사회 분위기도 시설만큼이나 중요하다”며 “언젠가 학생들과 기차로 수학여행을 가고 싶다”고 말했다.


이청아 기자 clear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