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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다, 국산 어린이영화… 명맥 끊겼어도 ‘추억’은 새록새록

입력 | 2022-05-05 03:00:00

액션활극 ‘액션동자’ 어린이날 개봉
1980, 90년대 쏟아졌던 어린이영화… 2011년 ‘서유기…’후 오락물 실종
수십년 지난뒤에도 ‘어린시절 추억’… 이준익 “동심에 영향… 감사한 일”
전문가 “어린이 시장 부활 어려울것”
영화계 “1년에 한두편만 지원해도 시장 유지되고 추억 만들어 줄 것”



어린이날인 5일 개봉하는 국산 어린이영화 ‘액션동자’에서 주인공 진구(홍정민)와 동자승들이 무술시범을 보이고 있다.


어린이날인 5일 영화 ‘액션동자’가 개봉한다. 주인공은 어릴 때 부모를 잃고 홀로 자신을 키우던 할머니마저 돌아가신 뒤 절에서 살게 된 열 살 소년 진구(홍정민)다. 진구와 동자승들은 절에 침입해 불상과 탱화를 훔친 도둑들을 잡으러 나선다. 우여곡절 끝에 이들은 절에서 연마한 무술과 기지를 활용해 도둑 소탕에 성공한다.

이 영화가 반가운 이유는 오랜만에 극장에서 상영하는 국산 어린이 실사 영화라는 점이다. 국산 어린이영화는 한동안 사실상 명맥이 끊겼다. 어린이영화가 쏟아졌던 1980, 90년대엔 개그맨 심형래가 주인공인 ‘영구와 땡칠이’ 시리즈가 인기를 끌었다. ‘서편제’ ‘장군의 아들’ 등 임권택 감독 작품의 제작사로 유명한 태흥영화사도 1988년 ‘어른들은 몰라요’, 1993년 ‘참견은 노 사랑은 오예’ 등 어린이영화 제작에 뛰어들었다. ‘어른들은 몰라요’는 서울 관객 22만 명을 모으며 그해 한국영화 중 흥행 3위를 기록했다. ‘왕의 남자’(2005년)로 천만감독 대열에 오른 이준익의 데뷔작 역시 어린이영화 ‘키드캅’(1993년)이었다.

1989∼1991년 4편이 잇달아 개봉하며 어린이들에게 큰 인기를 얻은 심형 래 주연의 ‘영구와 땡칠이’ 시리즈.

2000년대부터 어린이영화는 사양길을 걸었다. ‘마법경찰 갈갈이와 옥동자’(2004년) ‘서유기 리턴즈’(2011년) 이후 애니메이션 외의 어린이 실사 영화는 사실상 실종됐다. 2018년 ‘번개맨의 비밀’이 개봉했지만 뮤지컬을 스크린에 담은 것이었다. 이마저도 미취학 아동 대상이었다. 과거처럼 초등학생까지 아우르는 오락물 성격의 어린이영화는 자취를 감춘 것. 할리우드 대작 애니메이션 등 외국산 영화에 국산 어린이영화 시장은 잠식당한 상태다.

이준익 감독의 데뷔작인 어린이영화 ‘키드캅’은 극장 흥행에선 참패했지만 비디오 시장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제공·동아일보DB

수십 년이 지난 뒤에도 어린 시절 관람한 어린이영화를 추억하는 이들이 상당하다. ‘키드캅’ 관람평을 남기는 네이버 페이지엔 개봉 29주년인 현재도 “정말 잊을 수 없는 영화” 같은 감상평이 다양하게 달리고 있다. 이준익 감독은 본보와의 전화 통화에서 “당시 어린이들이 ‘나홀로 집에’ 등 외국 어린이영화를 보는 게 아쉬워 만든 영화였다”며 “연출력은 미숙했지만 만듦새를 떠나 누군가의 동심에 큰 영향을 줬다면 감사한 일”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어린이영화 시장이 부활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액션동자’ 역시 어린이영화 부활의 신호탄이 아니라 일회성으로 끝날 것이라는 것. 박기수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유튜브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서 콘텐츠가 쏟아지고 있는 환경이어서 국산 어린이영화 시장이 되살아날 가능성은 없다”라고 했다. 성인 콘텐츠를 자주 접하며 어린이들 눈높이가 성인 수준에 맞춰진 것도 어린이영화 부활을 어렵게 한다.

영화진흥위원회는 어린이영화를 포함한 가족영화에 대해 제작 지원을 해오던 사업을 2017년을 끝으로 진행하지 않고 있다. ‘액션동자’는 2018년 영진위 지원을 받긴 했지만 장르는 독립예술영화로 분류됐다. 극장 개봉으로 큰 수익을 거두기 어려운 장르인 데다 영진위 역시 별도 장르로 분류해 지원하지 않는 만큼 향후 ‘액션동자’ 외에 또 다른 국산 어린이영화가 등장해 명맥을 이을 가능성은 낮다. 이준익 감독은 “나도 다시 어린이영화를 해보고 싶지만 어린이영화는 투자자들이 선호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라고 했다.

‘액션동자’를 연출한 용민네(본명 최영민) 감독은 “한국영화의 다양성 확보 차원에서 어린이영화를 별도 장르로 분류해 1년에 한두 편 정도만 지원해도 국산 어린이영화 시장이 유지되고 어린이들에게도 추억을 만들어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