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에 대한 결정권이 없다면 민주주의도 없다. 낙태 금지는 독재적 시스템으로 가는 첫 단계다.” 미국 여성운동의 대모인 글로리아 스타이넘이 지난해 12월 언론 인터뷰에서 낙태 금지를 비판하며 한 말이다. 태아의 심장 박동이 감지되는 임신 6주부터 낙태를 금지한 텍사스주의 ‘심장박동법’ 시행을 막아달라는 소송을 연방대법원이 기각한 직후였다.
▷점점 보수화되는 대법원과 달리 미국의 여론은 낙태 허용을 지지하는 쪽이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 ‘로 대 웨이드(Roe vs Wade)’ 판결을 유지해야 한다는 답변은 54%로 뒤집어야 한다(28%)보다 두 배가량 많았다. 임신 24주까지 낙태를 허용한 ‘로 대 웨이드’ 판결은 1973년 선고 후 50년 가까이 여성의 낙태권을 보장해 온 최후의 보루였다. 그런데 이 판결마저 곧 폐기된다니 미국이 발칵 뒤집힐 만하다.
▷낙태는 미국의 보수와 진보가 가장 치열하게 맞붙어 온 논쟁거리다. 보건, 의료 정책을 뛰어넘는 정치적 문화적 이슈다. 2일 유출돼 버린 대법원의 낙태 판결 초안은 당장 11월 중간선거를 뒤흔들 판이다. 공화당과 민주당 모두 낙태권 사수 혹은 폐기를 위한 캠페인에 선거자금을 쏟아부을 것이라고 한다. 대법원장이 “최종 결정이 아니다”라고 진화에 나섰지만 “‘로 대 웨이드’ 판결은 시작부터 잘못됐다”고 맹폭한 결정이 바뀌기는 어려워 보인다. 118개의 주석이 달린 98쪽짜리 판결문 초안에 이미 9명의 대법관 중 5명이 동의했다.
▷이르면 다음 주 대법원의 최종 판결이 선고되자마자 50개주 가운데 최소 26개주는 즉시 낙태 금지를 강화하는 법 개정에 나설 것이라고 미 언론들은 전한다. 이에 맞서 온몸에 ‘당신 것이 아니다(not your body)’라고 써 붙인 여성과 낙태 찬성론자들은 또다시 거리로 나설 준비를 하고 있다. 이미 최악 수준인 정치 양극화와 사회 분열이 더 심화될 것이라는 탄식이 나온다. 그 충돌의 파장이 3년째 낙태죄 관련 입법 공백이 지속되는 한국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지켜봐야 할 일이다.
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