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 기자
북한 노동신문이 1일 노동절 기념 1면 사설에서 “오직 사회주의만이 온갖 형태의 지배와 예속, 사회적 불평등을 없애고 인민들을 모든 것의 주인으로 내세울 수 있다”고 주장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게 북한 매체의 특성이긴 하지만, 이런 철면피한 선전을 접할 때마다 저도 모르게 욕이 나온다. 지금 지구상에서 가장 계급 제도가 철저하게 고착된 곳이 바로 북한이기 때문이다. 계급 제도 하면 인도 카스트 제도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겠지만, 인도의 계급 제도는 현대에 점점 소멸되고 있다. 반면 북한은 1960년대 만든 계급 제도가 여전히 완벽하게 작동하고 있다.
북한의 출신성분 제도는 많이 알려져 있다. 북한에서 태어나면 기본군중, 복잡한 군중, 적대계급 잔여분자라는 3대 계층으로 구분되고, 이 3대 계층은 상위 혁명가 성분부터 하위 지주, 자본가, 일제관리 자손까지 56개로 자세히 분류된다. 이 출신성분의 굴레를 벗어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사회성분은 노동자, 군인, 사무원, 농민이라는 4개 계급으로 구성된다. 태어날 당시 부친의 직업으로 자녀의 사회성분이 결정된다. 사회성분은 직업상의 신분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사회성분은 수평적이지 않다. 우대 순서로 따지면 첫 번째가 노동자, 이와 비슷한 레벨의 두 번째가 군인, 세 번째가 사무원, 네 번째가 농민이다.
농민은 상위로 올라가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농민의 자식은 90% 이상 농민이 된다. 10년 군 복무를 마치고도 다시 농민으로 보낸다. 대학도 주로 사범대학에 보내 졸업 후 농촌학교 교사로 보내는 등 이 굴레는 철저하게 작용한다.
수재인 경우 아주 희박한 확률로 굴레를 벗어날 수는 있다. 좋은 대학을 졸업해 도시 대학 교원이나 연구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 경우에도 자신의 사회성분은 여전히 농민이며, 과오 없이 은퇴해야 자식이 사무원의 사회성분을 얻는다. 군 장교로 발탁되는 경우도 마찬가지로 자식부터 군인으로 바뀐다.
사무원은 외교관, 학자, 의사 등이 될 수 있어 농민보다는 훨씬 좋은 성분이다.
군인 역시 세습이다. 현재 북한군 장성의 대다수가 사회성분상 군인이라고 한다. 충성도를 검증받은 장성의 아들이 대를 이어 장성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이다.
노동자는 상위 계급이지만, 분포도가 매우 넓기도 하다. 진짜 노동자도 있고, 중앙당 간부도 있다. 이는 출신성분에서 갈렸기 때문이다. 즉, 날실은 좋은데 씨실이 안 좋아서 출세를 못 한 것이다. 북에서 살면 내가 가로와 세로의 어디쯤에 놓여있는지 대충 짐작은 할 수 있지만,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성분 서류는 간부부와 노동부 담당자 몇몇만 볼 수 있는 최상위 기밀서류이기 때문이다.
농민은 대를 잇는 노비인데, 왜 이런 신세가 됐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일설에 따르면 토지개혁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김일성이 광복 후 토지개혁 한다면서 농민들에게 땅을 나눠 주었다가 1950년대 후반 협동농장을 만든다며 다시 뺏었는데 농민들이 격렬히 저항했다. 그래서 김일성이 농민들은 이기주의자라며 치를 떨어 노비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반면 노동자들에겐 줬다 뺏은 일이 없어 반항할 이유가 없었다. 농민이 노비라면 사무원은 흔들리는 갈대로 취급한다. 북한에서 사회성분을 거슬러 올라가긴 매우 어렵지만, 위에 있다가 김씨 일가의 눈 밖에 나서 노비로 전락하는 것은 순식간이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