뱅크시 ‘위임된 의회’, 2009년.
침팬지들이 국회의사당을 장악한 이 그림. 영국을 대표하는 그라피티 화가 뱅크시의 대표작 중 하나다. 길이가 4m에 이르는 거대한 유화로 2019년 경매에서 약 150억 원에 팔리며 화제가 된 작품이다. 뱅크시는 왜 하필 침팬지를 그린 걸까? 이 그림은 어째서 그리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 걸까?
영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뱅크시는 사회 풍자적인 거리 낙서화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이 그림이 그려질 당시, 글로벌 금융위기와 유럽연합(EU)의 재정위기 속에서 유로존 경제의 불확실성과 난민 문제로 영국인들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었다. 게다가 영국은 EU 통합 과정에서 국민투표를 하지 않아 민주적 절차 결여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축적돼 왔었다.
그림 속에는 영국 하원 의사당을 점령한 침팬지 100마리가 등장한다. 내부는 열띤 토론 대신 고성과 광기로 가득하고, 의장석 앞 침팬지는 준비해 온 문건을 펼치지도 못한 채 서있다. 의원석에 앉은 몇몇 침팬지는 의장석을 향해 삿대질을 하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40여 년간 아프리카에 머물며 침팬지를 연구한 제인 구달에 따르면, 침팬지는 인간과 가장 비슷한 동물이다. 도구를 사용하며, 동족을 살해하는 어두운 본성도 가지고 있다. 그녀의 말대로, “침팬지는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우리 인간을 닮았다”.
이 그림의 원제목은 ‘질문 시간’이다. “예술은 불안한 자들을 편안하게, 편안한 자들을 불안하게 해야 한다”고 믿었던 뱅크시는 묻는 듯하다. 의사당을 점령한 침팬지들을 보고 가장 불안해할 자는 과연 누구인가라고.
이은화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