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폴 카버 영국 출신·유튜버
한국에 사는 외국인이라면 누구나 ‘안녕하세요’라는 간단한 인사말 한마디로 한국어 실력을 칭찬받은 적이 있을 것이다. 물론 칭찬을 하는 쪽에서는 한국어 실력 자체를 칭찬했다기보다는 한국어를 배우기 위한 노력을 인정한다는 의미가 더 클 것 같다. 게다가 출중한 한국어 원어민 발음으로 인사를 건넨 외국인이 그 다음 질문은 못 알아들을 때도 많아서 ‘한국어 잘하시네요’라는 찬사는 단순한 응원의 메시지로 받아들여야 할 경우가 많다.
그런데 내가 17년 전 한국에 왔을 때보다 지금은 한국말을 능숙하게 구사하는 외국인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서울에서 한국어가 유창한 양서방 찾기’라는 새로운 표현도 등장할 정도이니 말이다. 나도 아마 양서방 중 하나일지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외국어를 배우려는 열정이 큰 한국인들이 나에게 어떻게 한국어를 그렇게 잘하게 되었는지 묻곤 한다. 어떻게 하면 자신도 영어를 유창하게 할 수 있는지 알고 싶다고 하는 분들도 많다.
어떤 때는 농담으로 외국인 애인과 사귀면 된다고 대답하기도 하고, 직접 외국에 나가 살면서 공부하는 영어몰입 교육법이 가장 확실하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어학원을 오래 다니거나, 단기 언어교환 프로그램에 등록하거나, 출퇴근길에 어학 퀴즈를 매일 푼다고 해도 일상에서 꾸준히 언어를 사용하는 것에 비하면 그 효과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한국어 공부를 시작할 때, 나 같은 경우는 TV를 별로 안 보는 편이라 드라마 보기를 한국어 학습 꿀팁으로 추천해 드리긴 어렵다. 그러나 강산이 변해서 한류가 전 세계인의 주목을 끌다 보니 해외에서 한국 드라마를 너무 쉽게 접할 수 있게 됐다. 그 영향으로 한국에 관심이 있는 많은 외국인들이 어학당이 아닌 한국 드라마 시청하기로 한국어를 공부하기 시작하는 경우가 흔해지고 있다. 한국 드라마와 한국어 공부의 연관성에 대해 크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최근 한국 드라마 번역 작업을 시작하면서 나도 이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
방송을 통해 한국어를 공부하게 되면 어떤 효과가 있을까? 어학당과 비교하면 장단점이 있을 것이다. 어학당에서는 문법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지만 내용은 예의 바른 철수와 영희의 하루에서 끝나니 조금 딱딱하고 촌스러운 한국어가 돼 버릴지도 모른다. 한국어가 역동적이고 혁신적인 언어인지라 어학당에서는 매일매일 새로 나오는 줄임말, 신조어, 유행어 등을 배우지도 못한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드라마를 통해서 공부하면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한국어 말투를 배울 수는 있지만 드라마 대사들이 한국어를 대표하는 표본이 되는 대화인지는 의문이다. 재빠르게 지나가는 대화들을 분석 없이 볼 때는 못 느꼈는데 번역 작업을 하면서 깨달은 것 같다. 나와 대화하는 주변 사람들이 모두 천사표인지는 모르겠지만 드라마에 나오는 욕설에 비하면 10%도 안 쓰는 것 같다. 내가 작업하는 드라마만 유독 욕설이 많은 것일지도 모르지만 최소한 내가 번역하는 드라마를 보고 공부한 외국인이 한국에 오면 큰일이 날 일이다.
또 하나는 존댓말이다. 드라마에서 부부끼리, 심지어는 애인들 사이에서도 존댓말을 쓸 때가 많다. 한편에서는 욕설이 난무한데 또 한편에서는 깍듯한 존댓말을 사용하니 외국인 입장에서는 사랑하는 사이에서만 쓰는 말이 존댓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한국에서도 강산이 여러 번 바뀌어서 실제 연인끼리 존댓말을 하는 경우는 거의 전무한데도 말이다.
폴 카버 영국 출신·유튜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