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갑 갤러리 클립 대표
코로나19로 폐쇄됐던 구립체육관이 약 2년 만에 다시 문을 열었다. 반가운 마음에 발걸음도 가볍게 체육관으로 가 수영 강습을 등록했다. 실로 오랜만인지라 속도는 안 나고 숨은 가쁘고. 몸이 그새 또 주저앉았음을 실감하고 왔다. 일상을 찾았다며 좋아라 했는데 아직은 아니었다. 로비에 있던 카페도, 매점도 버려지듯 잠겨 있었다. 빈 공간에 쓰다 남은 집기만 덩그러니 있었다. 바깥에 있던 나무 테이블과 의자도 보이지 않았다. 수영을 마친 후 매점에서 바나나우유를 하나 사 들고 가 그곳에서 휴대전화도 보고 좋은 날씨도 느끼며 한숨 돌리는 것이 작은 행복이었는데 더 이상 의자가 없으니 정원 바깥쪽에 있는 큼지막한 돌에 엉거주춤 앉아 있다가 곧 일어섰다.
날씨는 좋고 집으로 직진하는 것이 아쉬워 인왕산 둘레길로 산책 코스를 잡았다. 봄 속의 자연, 자연 속의 봄에는 어떤 것을 풀리게 하는 힘이 있는 것 같다. 근간의 응어리와 걱정, 욕심이 용해되듯 스르르 풀어졌다. 특히 좋았던 것은 산책 코스 곳곳에 있던 의자에 앉아 잠시 숨을 고르는 시간이었다. 속도를 포기하고 일단 마음 편히 앉고 나면 그 시점과 지점에서 새로운 풍경과 감각이 돋아난다. 하늘하늘 흔들리는 애기똥풀이 눈에 더 꽉 차서 들어오고, 숲에 내려앉은 볕의 움직임도 한층 따사롭게 와 닿는다. 바로 전까지만 해도 ‘덥다’라고 혼잣말을 내뱉었는데 금세 ‘좋다’고 말을 바꾸는 것도 의자에 앉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몇 달 전 인터뷰로 만난 분과 의자 앉기 게임에 관해 이야기를 했다. 의자를 빙 둘러 모아 놓고 의자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 주변을 빙글빙글 돌다가 심판이 사인을 주면 민첩함을 발휘해 내 의자를 쟁취하는 게임. 언뜻 평범한 놀이처럼 보이지만 그 안을 파고들면 내 의자, 내 자리를 갖는 것에 대한 인류의 오랜 욕망과 본능, 집착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골자였다. 이 놀이를 영어로 하면 ‘Game of musical chairs’. 뮤지컬처럼 즐겁고 신나는 어감이지만 실제로는 생존 게임처럼 치열하고 잔인한 구석도 있다.
정성갑 갤러리 클립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