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후… 서울서 곡성으로 간 소설가 김탁환 “1년 4개월째 늘 똑같은 일상이지만 대도시 삶보다 ‘풍요’… 마음도 건강 섬진강 배경 작품 계속 쓰고 싶어 적어도 10년은 떠나지 않을 것”
전남 곡성군의 들녘에서 자전거와 함께 서 있는 소설가 김탁환. 그는 “오전 집필을 마친 뒤엔 산, 들, 강 어디로도 갈 수 있다”며 “자전거를 타고 가거나 걷다가 조금만 호기심을 따르면 낯선 풍경과 만난다”고 했다. 권영일 사진가 제공
오전 5시 새소리에 눈을 뜬다. 세수를 하고 2시간 동안 소설을 쓴다. 옷을 챙겨 입고 도보 40분 거리의 논으로 천천히 걸어간다. 거기서 열심히 벼농사를 짓는다. 간단히 점심을 챙겨 먹고 폐교 2층의 작업실에서 다시 소설을 쓴다. 해 질 무렵 집으로 걸어 돌아온다. 오후 9시면 잠에 든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일상은 늘 같다. 농사에 시간을 많이 뺏길 줄 알았지만 단순한 삶 덕에 소설 집필량은 서울에 있을 때와 같다. 그러나 그때보다 더 행복한 것 같다. 최근 에세이 ‘김탁환의 섬진강 일기’(해냄·사진)를 펴낸 소설가 김탁환(54)의 하루는 풍요롭다.
올해 쟁기질이 벌써 시작된 걸까.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3일 만난 그의 얼굴은 건강하게 그을려 있었다. 그는 “지난해 1월 1일 전남 곡성군으로 거처를 옮긴 뒤 1년 4개월 동안 오전에는 글밭에서, 오후에는 텃밭에서 살고 있다”며 “KAIST 문화기술대학원 교수와 전업 작가로 대전과 서울에서 각각 10여 년을 살았는데 이제는 삶이 완전히 바뀌었다”며 웃었다.
“인구가 2만7000여 명에 불과한 곡성에서 생애 가장 만족한 삶을 살고 있어요. 가끔씩 서울에 올라오는 시간을 빼곤 이곳에서 한 해 대부분을 보내며 맑은 물맛과 진한 흙내가 가득한 문장을 쓰고 있습니다. 제철 채소, 과일처럼 ‘제철 마음’을 먹으며 건강해지고 있죠.”
그는 “대도시의 삶에 회의를 느끼다 팬데믹이 시작된 뒤 이사 결심을 내렸다”며 “섬진강을 배경으로 한 장편소설을 쓰고 있는데 내가 짓는 농사가,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모두 작품에 녹아들고 있다”며 웃었다. 그는 또 “지난해 수확한 벼 품종이 630종에 달할 정도로 초보 농사꾼으로서도 나쁘지 않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며 “벼농사 외에도 텃밭과 정원을 가꾸느라 어깨와 허벅지 근육이 뭉치는 게 다반사”라고 했다.
그는 겨울에는 책방을, 봄·가을에는 이야기학교를 운영한다. 할머니를 모시고 온 20대 손녀부터 은퇴 후 귀촌한 60대까지 다양한 곡성 주민들이 그의 수업을 들으러 온다. 그에게 언제까지 그곳에 머물 것이냐고 물으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가수는 노래 따라가고, 소설가는 이야기 따라간다고 했나요. 적어도 10년은 떠나지 않을 것 같아요. 미국 소설가 마크 트웨인(1835∼1910)이 미국 중남부 미시시피주에서 살았던 경험을 녹여 ‘톰 소여의 모험’ ‘허클베리 핀의 모험’ ‘미시시피강의 추억’의 미시시피 3부작을 썼듯 저도 섬진강을 배경으로 한 작품을 계속 쓰고 싶거든요. 이곳에서 살아가고 노동하고 글을 쓰는 진정한 ‘마을 소설가’가 될 겁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