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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 손질, 선 하나에도… 혼과 신심 담아야 佛事”

입력 | 2022-05-06 03:00:00

‘붓을 든 수행자…’ 펴낸 불화장 보유 임석환
“인생도 하나의 불화를 완성하는 과정
법도대로 칠해야만 경지 이를수 있죠”



불화장 임석환 씨가 자신이 운영하는 경기 고양시 불화교육소에서 불화를 그리고 있다. 한국문화재재단 제공


“제 인생이 하나의 불화(佛畵)를 완성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붓 손질, 선 하나에도 혼을 담을 수밖에요.”

국가무형문화재 불화장 보유자 임석환 씨(76)의 생애를 담은 신간 ‘붓을 든 수행자 임석환’(문보재)이 최근 나왔다. 그는 5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나를 불러주는 사찰이 있으면 지금도 재료값만 받고 불화를 그린다”며 “믿음 없이는 일하고 대가를 받는 노동에 불과할 뿐, 신심으로 그린 그림이야말로 불사(佛事)”라고 강조했다.

처음부터 불심(佛心)으로만 시작한 일은 아니었다. 가난한 대목장의 4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그는 1965년 서울 은평구 진관사에서 일하던 사촌으로부터 “단청을 칠해주면 돈을 받을 수 있다”는 제안을 받고 화원이 됐다. 그는 “먹고살려면 손 기술 하나는 익혀둬야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일”이라고 했다. 진관사에서 국가무형문화재 단청장을 지낸 고(故) 혜각 스님을 만났다. 그는 “혜각 스님 문하에서 단청 작업을 하면서 혹시라도 누가 될까 밤새 이불을 뒤집어쓰고 촛불 하나에 의지해 그림을 연습했다. 그땐 촛불 연기에 코가 검게 그을리는 줄도 몰랐다”며 웃었다.

1967년 혜각 스님을 따라 경북 김천 직지사 천불전 단청 작업에 참여한 날 일손을 돕기 위해 온 고 혜암 스님을 만났다. 경남 하동 쌍계사에서 불화를 그리던 혜암 스님은 그를 제자로 받아들였다. 그는 “혜암 스님은 제게 붓 잡는 법을 일러주기 전에 기도하는 법부터 가르쳐 주셨다. 출가하는 스님처럼 머리를 깎고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배웠다”고 말했다. 스승은 수개월이 지나서야 제자에게 붓을 건넸다. 손 기술만으로는 불화를 그릴 수 없다는 가르침이었다. ‘신심으로 그린다’는 신념을 이때 배웠다.

“스승에게 붓을 받은 뒤부터 엉덩이에 주먹만 한 종기가 올라올 때까지 온종일 습화(習畵)를 그렸어요. 3000장을 그리고 나서야 불화의 밑그림이라고 불리는 불초 작업을 오롯이 혼자 할 수 있게 됐습니다.”

2006년 국가무형문화재 불화장으로 지정된 그는 부산 범어사, 강화도 전등사, 양산 통도사 등 전국 사찰을 돌며 단청과 탱화를 그렸다. 이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1999년 경기 포천 법왕사에서 가로 10m, 세로 6m에 이르는 ‘삼천불탱화(三千佛幀畵)’를 완성한 순간이었다. 밑그림만 3개월이 걸려 총 1년에 걸쳐 탱화를 완성한 그는 “잔꾀를 부리지 않고 법도대로 붓선 하나하나를 칠해야만 어떤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예술뿐 아니라 삶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