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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의 이너서클, 그의 눈과 귀를 막다[김수현의 세계 한 조각]

입력 | 2022-05-06 11:30:00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정부 관료들과 화상 회의를 하고 있다. 집무실 안에는 오직 푸틴뿐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그의 고립이 길어지고 심리가 불안정해진데다 강경파 최측근에 둘러싸여 전쟁을 강행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크렘린궁 제공

“푸틴의 이너서클(inner circle·최측근)은 누구인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벌써 두 달을 넘어가고 있습니다. 당초 72시간 안에 수도 키이우를 점령하겠다던 전쟁이 길어지는 원인으로 외신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최측근들을 꼽습니다. 푸틴의 눈과 귀를 막은 그들이 전황(戰況)을 잘못 예측해 보고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푸틴이 그들의 꼭두각시일 확률은 낮습니다. 하지만 이너서클의 역할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푸틴 최측근은 몇 가지 주요 특징이 있습니다. 이들은 대부분 푸틴의 고향이자 정치 행보를 시작한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입니다. 한때 러시아에서는 “피테르(상트페테르부르크의 줄임말) 출신이면 글을 읽고 쓰기만 해도 고위직에 오른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이들이 정치 경제 산업 등 전방위 요직을 차지했기 때문이죠. 이들 가운데 1996년 상트페테르부르크 부시장이던 푸틴이 세운 ‘오제로 다차(별장) 집단농장’을 함께 운영한 극소수는 최측근 중 최측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들 대다수는 실로비크(silovik·복수로 실로비키)입니다. 러시아어로 ‘강한 사람들(strongmen)’을 뜻하는 실로비키는 정보기관, 군대, 경찰 혹은 관련 기관 출신을 뜻합니다. 현재 핵심 실로비키는 푸틴처럼 러시아 국가보안위원회(KGB) 요원 출신입니다. 그 중 일부는 푸틴과 함께 1980년대 동독에서 근무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레닌그라드 트리오’

왼쪽부터 니콜라이 파트루셰프 국가안보위원회 비서관, 세르게이 나리쉬킨 해외정보국 국장, 알렉산더 보로트니코프 연방보안국(FSB) 국장.

1970년대 상트페테르부르크가 레닌그라드로 불리던 시절입니다. 푸틴은 막 KGB에 들어가 레닌그라드에서 활동을 시작합니다. 그의 옆에는 동료 3명이 있습니다. 이 3명을 뜻하는 ‘레닌그라드 트리오’는 지금까지 푸틴과 가장 오래한 심복입니다.

강경파 중 강경파로 통하는 니콜라이 파트루셰프 국가안보위원회 비서관은 핵심 외교 참모입니다. 1975년 푸틴과 같은 해에 KGB에 들어왔고 1999년 푸틴 후임자로 KGB 후신인 러시아 연방보안국(FSB) 국장에 임명됩니다.

서방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 침공을 그가 주도해 결정했다고 분석합니다. 파트루셰프는 미국과 자본주의 체제에 극도의 경계심을 갖고 있습니다. 미국이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러시아를 분리시켰고 자본주의가 국가를 부패하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2014년 우크라이나의 친러시아 정권을 무너뜨린 유로마이단 시위 배후에 미국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올 2월 우크라이나 침공 직전 열린 러시아 국가안보회의에서 푸틴에게 “똑바로 대답하라”는 말까지 들으며 혼쭐난 인물이 있었죠. 세르게이 나리쉬킨 해외정보국(SVR) 국장입니다. 하원 두마 의장까지 맡은 그는 푸틴 집권 초부터 그의 그림자 같은 인물입니다. 러시아 ‘역사적 진실 위원회’ 위원장이자 국영방송 채널1 이사회 의장까지 하고 있는 그는 이번 침공의 이념적 근거를 세운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현 FSB 국장 알렉산더 보르트니코프는 파트루셰프와 마찬가지로 푸틴의 KGB 동료입니다. 푸틴에게 그는 최고의 정보통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최근 우크라이나 정보당국은 그가 러시아 ‘반(反)푸틴 세력’이 점찍은 후계자라고 공개했습니다. 쿠데타로 푸틴이 축출될 경우 그가 새로운 지도자를 맡아 서방과의 관계 개선을 이끌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옵니다. 하지만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는 게 중론입니다.


● 푸틴의 올리가르히
올리가르히(Oligarch)는 러시아어로 신흥 재벌을 뜻합니다. 옛 소련 해체 직후인 1990년대 초반 민영화 과정에서 국유기업을 손아귀에 넣은 재벌을 의미합니다. 푸틴 전임자인 보리스 옐친 대통령 때부터 올리가르히는 정치권과 강력하게 유착했습니다. 집권 후 푸틴은 올리가르히 길들이기에 나섭니다. 푸틴에 협력하길 거부한 일부 재벌은 배임이나 횡령 등 이유로 체포됩니다. 그 빈자리를 푸틴의 새로운 올리가르히가 채우게 됩니다.



지난해 2월 크렘린궁에서 푸틴 대통령과 함께한 이고리 세친 로스네프트 최고경영자(CEO). 로스네프트는 러시아에서 두 번째로 큰 국영기업이자 대표 석유 기업이다. 크렘린궁 웹사이트 캡처

“러시아 2인자는 누구인가?”

러시아의 2인자가 만약 존재한다면 먼저 석유 재벌 이고리 세친을 떠올리는 서방 전문가들이 적지 않습니다. 세친은 러시아 국영 석유회사 로스네프트 최고경영자(CEO)입니다. 푸틴이 메드베데프를 대통령으로 앉히고 슬쩍 총리를 맡은 2008년~2012년 부총리를 지냈습니다. 푸틴이 상트페테르부르크 부시장이던 1990년대 초반 세친은 그의 비서실장에 오릅니다. 2004년 푸틴은 당시 러시아 2위 국영회사 로스네프트 대표로 세친을 임명합니다. 러시아 경제 핵심인 에너지를 맡긴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고리 세친 로스네프트 CEO(오른쪽)가 웨스트어킨스키 유전 31갱도에서 처음 추출한 석유를 병에 담아 푸틴에게 주고 있다. 크렘린궁 웹사이트 캡처

러시아 언론은 세친을 다스베이더, 또는 ‘지구상 가장 무서운 인물’이라고 표현합니다. 영국 정부는 세친을 ‘푸틴의 오른팔’이라고 공개적으로 칭했습니다. 2016년 11월 알렉세이 울류카예프 러시아 경제장관이 뇌물 혐의로 체포됐을 때 세친이 개입했다는 의혹이 있습니다. 세친이 회의가 있다며 울류카예프를 불러 놓고 거액의 현금을 건넸고 받자마자 체포했다는 것입니다. 세친이 경제와 정치를 손아귀에 쥐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건으로 회자됩니다.


푸틴의 죽마고우 로텐베르크 형제. 형 아르카디(왼쪽)와 동생 보리스는 어린 시절부터 푸틴과 유도를 함께하며 우정을 쌓아갔다.

아르카디와 보리스 로텐베르크 형제는 푸틴의 죽마고우입니다. 형 아르카디는 12세 때 유도 수업에서 푸틴을 처음 만났다고 합니다. 이후 셋은 서로서로 유도 파트너를 하며 성장합니다. 로텐베르크 형제는 현재 러시아 최대 규모 가스관 및 송전선 건설 회사 스트로이가스몬타슈를 공동 소유하고 있습니다. 푸틴의 죽마고우라는 이유로 여러 국영사업을 수주하면서 엄청난 부를 축적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유도복을 입고 푸틴(오른쪽)과 유도 경기를 보고 있는 아르카디.

이들 형제는 대표적 ‘유도크라시(judocracy·judo+bureaucracy)라고 볼 수 있습니다. 유도광인 푸틴과 함께 유도를 중심으로 형성된 정치 파벌을 뜻합니다. 러시아 고위 정치인이나 관료 중에는 유도가 취미인 사람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푸틴과 한 판 ’제대로‘ 붙기만 하면 고위직에 오를 확률이 높다는 얘기입니다.


러시아 ’석유 황제‘ 게나디 팀첸코

게나디 팀첸코는 푸틴의 숨은 재산 관리인으로 알려진 러시아 ’석유 황제‘입니다. 1990년대 초반 청년 석유 무역상과 정치 샛별은 손을 잡습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외교위원회 위원장이던 푸틴은 팀첸코에게 석유 수출 허가증을 내줍니다. 둘의 관계가 본격화합니다.


게나디 팀첸코(파란 헬멧)가 아이스하키 경기를 앞두고 푸틴(11번)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크렘린궁 웹사이트 캡처

팀첸코는 스위스에 러시아산 석유 수출업체 ’군보르‘를 공동 설립하며 억만장자로 부상합니다. 이에 군보르의 배후에 푸틴이 있다는 설이 유력하게 제기됩니다. 미국 재무부는 2014년 러시아의 크름반도 강제 병합 이후 푸틴이 군보르에 비공개 투자했다는 이유로 팀첸코를 제재 대상에 올립니다. 다만 팀첸코는 제재가 효력을 발휘하기 전날 자신의 모든 군보르 지분을 스위스의 동업자에게 넘기며 제재를 피합니다.


● 친구보다는 각자도생

러시아 최대 민영은행 ’알파방크‘ 공동 설립자 미카일 프리드먼. 모스크바=AP 뉴시스

이너서클로 알려진 인사 중에는 우크라이나 침공에 반대하는 인물도 있습니다. 대표적 인물이 러시아 최대 민영은행 알파방크 공동 설립자 미카일 프리드먼입니다. 프리드먼은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자신이 운영하는 영국 소재 투자회사 직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전쟁은 절대 답이 될 수 없다. 해결이 쉽지 않아 보이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유혈사태가 종식되기를 바라는 이들과 함께하는 것뿐”이라고 밝힙니다.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는 이번 전쟁을 비극이라고 말합니다.


세계 2위 알루미늄 생산업체 ’루살‘ 회장 올레그 데리파스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나흘째인 2월 27일 데리파스카가 텔레그램에 올린 메시지. “가능한 빨리 협상을 시작해야 한다.” 올레그 데리파스카 텔레그램


러시아 알루미늄 올리가르히 올레그 데리파스카는 좀 더 대담했는데요. 공개적으로 전쟁 중단을 요구하는 짧은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자신의 텔레그램에 “이 세계는 매우 중요하다! 가능한 빨리 협상을 시작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올립니다.


로만 아브라모비치 잉글랜드프리미어리그(EPL) 첼시FC 전 구단주. EPL 사무국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그의 구단주 자격을 박탈했다. 그는 러시아-우크라이나 평화 협상에 비공식적인 중재자 역할로 참여했다. 영국은 푸틴의 최측근이라는 이유로 그의 자산을 동결했다. 예테보리=AP 뉴시스

원치 않은 ’손절‘을 해야만 했던 인물도 있습니다. 프로축구 잉글랜드프리미어리그(EPL) 첼시FC 구단주였던 로만 아브라모비치입니다. 그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여론을 의식한 듯 첼시 구단을 매각하겠다고 발표합니다. 이어 우크라이나 전쟁 희생자를 위한 구호재단을 설립해 매각 순수익 전액을 기부하겠다고 밝힙니다.


우크라이나 당국에 체포된 푸틴 최측근 빅토르 메드베드추크. 체포 당시 그는 우크라이나 군복을 입고 있었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제공

20년 우정 ’덕분에‘ 도주해야만 했던 인물도 있습니다. 우크라이나의 대표적 친(親)러시아 정치인 빅토르 메드베드추크입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브로커‘ 역할을 맡아 온 메드베드추크는 2000년대 초반부터 푸틴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푸틴이 메드베드추크 막내딸의 대부라는 점은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고, 소치에서 함께 F1 경기를 관람하는 등 두 사람이 함께 있는 장면은 자주 목격됐습니다.

메드베드추크는 이번 러시아 침공이 성공했을 시 ’꼭두각시 정권‘을 이끌 유력한 인물로 거론됐습니다. 그는 앞서 2016년 한 인터뷰에서 “크름반도는 법적으로는 우크라이나 영토지만, 불행하게도 사실상 러시아에 속한다”고 말하며 오히려 우크라이나 정부의 고립 정책을 비난했습니다.

눈엣가시와도 같은 존재였던 그는 젤렌스키 정권이 들어온 후 2021년 반역 혐의로 가택 연금에 처해집니다. 그리고는 이번 침공이 발발한 지 사흘 만인 2월 27일 도주했습니다. 한 달도 되지 않아 그는 우크라이나 군복을 입은 채로 체포됐습니다. 러시아는 그를 두고 포로 교환을 하자는 우크라이나의 요청에 “우리 시민이 아니다”라며 단칼에 거절합니다.

전쟁 초기 마리우폴에서 폭격을 맞아 죽은 어린 소녀에 대한 기사를 준비한 적이 있습니다. 죽은 소녀를 끝내 놓지 못하던 의사는 “이 소녀의 눈을 푸틴에게 보여줘라!”고 절규했습니다. 두 달 넘게 이어지는 전쟁, 매일같이 참혹한 사진들과 마주하지만 가장 또렷이 기억나는 것은 언제나 그 소녀입니다. 이번 기사를 준비하면서 같은 이야기를 푸틴의 최측근들에게 전하고 싶었습니다. 소녀의 눈, 그리고 수많은 우크라이나 시민들의 눈물을 그 누군가는 푸틴에게 똑똑히 보여줬으면 합니다.


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