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정부 관료들과 화상 회의를 하고 있다. 집무실 안에는 오직 푸틴뿐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그의 고립이 길어지고 심리가 불안정해진데다 강경파 최측근에 둘러싸여 전쟁을 강행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크렘린궁 제공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벌써 두 달을 넘어가고 있습니다. 당초 72시간 안에 수도 키이우를 점령하겠다던 전쟁이 길어지는 원인으로 외신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최측근들을 꼽습니다. 푸틴의 눈과 귀를 막은 그들이 전황(戰況)을 잘못 예측해 보고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푸틴이 그들의 꼭두각시일 확률은 낮습니다. 하지만 이너서클의 역할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푸틴 최측근은 몇 가지 주요 특징이 있습니다. 이들은 대부분 푸틴의 고향이자 정치 행보를 시작한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입니다. 한때 러시아에서는 “피테르(상트페테르부르크의 줄임말) 출신이면 글을 읽고 쓰기만 해도 고위직에 오른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이들이 정치 경제 산업 등 전방위 요직을 차지했기 때문이죠. 이들 가운데 1996년 상트페테르부르크 부시장이던 푸틴이 세운 ‘오제로 다차(별장) 집단농장’을 함께 운영한 극소수는 최측근 중 최측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들 대다수는 실로비크(silovik·복수로 실로비키)입니다. 러시아어로 ‘강한 사람들(strongmen)’을 뜻하는 실로비키는 정보기관, 군대, 경찰 혹은 관련 기관 출신을 뜻합니다. 현재 핵심 실로비키는 푸틴처럼 러시아 국가보안위원회(KGB) 요원 출신입니다. 그 중 일부는 푸틴과 함께 1980년대 동독에서 근무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왼쪽부터 니콜라이 파트루셰프 국가안보위원회 비서관, 세르게이 나리쉬킨 해외정보국 국장, 알렉산더 보로트니코프 연방보안국(FSB) 국장.
강경파 중 강경파로 통하는 니콜라이 파트루셰프 국가안보위원회 비서관은 핵심 외교 참모입니다. 1975년 푸틴과 같은 해에 KGB에 들어왔고 1999년 푸틴 후임자로 KGB 후신인 러시아 연방보안국(FSB) 국장에 임명됩니다.
서방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 침공을 그가 주도해 결정했다고 분석합니다. 파트루셰프는 미국과 자본주의 체제에 극도의 경계심을 갖고 있습니다. 미국이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러시아를 분리시켰고 자본주의가 국가를 부패하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2014년 우크라이나의 친러시아 정권을 무너뜨린 유로마이단 시위 배후에 미국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해 2월 크렘린궁에서 푸틴 대통령과 함께한 이고리 세친 로스네프트 최고경영자(CEO). 로스네프트는 러시아에서 두 번째로 큰 국영기업이자 대표 석유 기업이다. 크렘린궁 웹사이트 캡처
러시아의 2인자가 만약 존재한다면 먼저 석유 재벌 이고리 세친을 떠올리는 서방 전문가들이 적지 않습니다. 세친은 러시아 국영 석유회사 로스네프트 최고경영자(CEO)입니다. 푸틴이 메드베데프를 대통령으로 앉히고 슬쩍 총리를 맡은 2008년~2012년 부총리를 지냈습니다. 푸틴이 상트페테르부르크 부시장이던 1990년대 초반 세친은 그의 비서실장에 오릅니다. 2004년 푸틴은 당시 러시아 2위 국영회사 로스네프트 대표로 세친을 임명합니다. 러시아 경제 핵심인 에너지를 맡긴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고리 세친 로스네프트 CEO(오른쪽)가 웨스트어킨스키 유전 31갱도에서 처음 추출한 석유를 병에 담아 푸틴에게 주고 있다. 크렘린궁 웹사이트 캡처
푸틴의 죽마고우 로텐베르크 형제. 형 아르카디(왼쪽)와 동생 보리스는 어린 시절부터 푸틴과 유도를 함께하며 우정을 쌓아갔다.
유도복을 입고 푸틴(오른쪽)과 유도 경기를 보고 있는 아르카디.
러시아 ’석유 황제‘ 게나디 팀첸코
게나디 팀첸코(파란 헬멧)가 아이스하키 경기를 앞두고 푸틴(11번)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크렘린궁 웹사이트 캡처
러시아 최대 민영은행 ’알파방크‘ 공동 설립자 미카일 프리드먼. 모스크바=AP 뉴시스
세계 2위 알루미늄 생산업체 ’루살‘ 회장 올레그 데리파스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나흘째인 2월 27일 데리파스카가 텔레그램에 올린 메시지. “가능한 빨리 협상을 시작해야 한다.” 올레그 데리파스카 텔레그램
러시아 알루미늄 올리가르히 올레그 데리파스카는 좀 더 대담했는데요. 공개적으로 전쟁 중단을 요구하는 짧은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자신의 텔레그램에 “이 세계는 매우 중요하다! 가능한 빨리 협상을 시작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올립니다.
로만 아브라모비치 잉글랜드프리미어리그(EPL) 첼시FC 전 구단주. EPL 사무국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그의 구단주 자격을 박탈했다. 그는 러시아-우크라이나 평화 협상에 비공식적인 중재자 역할로 참여했다. 영국은 푸틴의 최측근이라는 이유로 그의 자산을 동결했다. 예테보리=AP 뉴시스
우크라이나 당국에 체포된 푸틴 최측근 빅토르 메드베드추크. 체포 당시 그는 우크라이나 군복을 입고 있었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제공
메드베드추크는 이번 러시아 침공이 성공했을 시 ’꼭두각시 정권‘을 이끌 유력한 인물로 거론됐습니다. 그는 앞서 2016년 한 인터뷰에서 “크름반도는 법적으로는 우크라이나 영토지만, 불행하게도 사실상 러시아에 속한다”고 말하며 오히려 우크라이나 정부의 고립 정책을 비난했습니다.
눈엣가시와도 같은 존재였던 그는 젤렌스키 정권이 들어온 후 2021년 반역 혐의로 가택 연금에 처해집니다. 그리고는 이번 침공이 발발한 지 사흘 만인 2월 27일 도주했습니다. 한 달도 되지 않아 그는 우크라이나 군복을 입은 채로 체포됐습니다. 러시아는 그를 두고 포로 교환을 하자는 우크라이나의 요청에 “우리 시민이 아니다”라며 단칼에 거절합니다.
전쟁 초기 마리우폴에서 폭격을 맞아 죽은 어린 소녀에 대한 기사를 준비한 적이 있습니다. 죽은 소녀를 끝내 놓지 못하던 의사는 “이 소녀의 눈을 푸틴에게 보여줘라!”고 절규했습니다. 두 달 넘게 이어지는 전쟁, 매일같이 참혹한 사진들과 마주하지만 가장 또렷이 기억나는 것은 언제나 그 소녀입니다. 이번 기사를 준비하면서 같은 이야기를 푸틴의 최측근들에게 전하고 싶었습니다. 소녀의 눈, 그리고 수많은 우크라이나 시민들의 눈물을 그 누군가는 푸틴에게 똑똑히 보여줬으면 합니다.
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