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낙태권을 인정한 ‘로 대(對) 웨이드’ 판결을 뒤집는 취지의 미국 연방대법원 판결 초안이 유출된 가운데 미국의 여러 시민단체가 오는 14일 전국적인 시위에 나선다. 반세기 가까이 미국 여성들의 낙태권을 보장해온 법적 근거가 흔들릴 위기에 처하자 미국 사회가 들끓고 있는 것이다.
6일(현지시간) AFP 통신 등에 따르면 가족계획연맹(Planned Parenthood Action Fund)의 대표이사 켈리 로빈슨은 오는 14일을 ‘대규모 행동의 날’로 정하고 뉴욕, 워싱턴, 시카고, 로스앤젤레스 등 4개 도시에서 수백명의 행진 및 시위를 예고했다.
로빈슨 대표는 “전국적으로 우리의 분노를 표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여성혐오적·인권차별적 발언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어온 진보 단체 여성행진의 레이첼 카모나 대표도 “이 나라 여성들에게 이번 여름은 분노의 여름이 될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라나 엡팅 무브온 대표 역시 “우리는 이전에 보지 못한 에너지를 보고 있다”며 “공화당에 대한 우리의 메시지는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미국 곳곳에서는 판결문 초안이 유출된 지난 2일 밤부터 시위가 벌어졌다. 지난 3일에는 1000명이 넘는 인파가 대법원 본부 밖에 모이기도 했다. 법원은 시위를 우려해 법원 주변에 임시 울타리를 설치해둔 상태다.
◇’로 대 웨이드‘ 판결 50년 만에 뒤집히나…오는 6월 최종 판결
알리토 대법관은 98쪽에 달하는 다수의견 초안에서 “로 대 웨이드 판결은 처음부터 터무니없이 완전히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에서의 낙태 합법화는 1973년 로 대 웨이드 판결을 통해 이뤄졌다. 이 판결은 태아가 독자적으로 생존이 가능하다고 여겨지는 임신 22~24주 이전까지 임신중절을 허용하도록 했다.
이후 연방대법원은 1992년 ’케이시 판결‘이라 불리는 판결에서 낙태 합법화 원칙은 유지하면서도 로 대 웨이드 판결의 입장을 부분적으로 수정했다. 여성에게 ’지나친 부담‘을 주지 않는 선에서 각 주 정부가 임신중절 규제 조항을 자체적으로 마련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이다.
그러나 미시시피주(州)는 낙태 금지 기준을 임신 20주 후에서 임신 15주까지로 앞당겼고, 심각한 태아 기형 등을 제외한 모든 낙태를 금지했다. 또한 산모를 구하기 위해 낙태를 시술한 의사도 최대 징역 10년형에 처할 수 있도록 했다.
연방대법원은 현재 미시시피주의 법률에 대한 위헌 여부를 가리는 심리를 진행 중이며, 오는 6월께 최종 결정을 내릴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공화당과 민주당 출신 대통령이 지명한 대법관이 6명 대 3명이라는 연방대법원이 사실상 균형을 잃었다는 점이다. 미국에서 대법관은 스스로 사임하거나 사망하지 않는 한 평생 유지되는 종신직이다.
존 로버츠 연방대법원장은 유출 문건이 진위임을 확인했으며, 초안이 최종 판결로 이어질 경우 최소 20개 주에서 대부분의 낙태가 불법화된다.
◇11월 중간선거 ’뜨거운 감자‘로 급부상…“투표함 앞에서 만나자”
낙태권을 두고 공화당과 민주당이 50년 동안 치열한 논쟁을 벌여온 만큼, 이번 유출 사건은 오는 11월 중간선거에서 주요 쟁점으로 급부상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3일 성명을 통해 “여성의 (중절) 선택은 기본권이라고 믿는다”며 “우리 법의 공정성과 안정성은 법률을 뒤집지 말라고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간선거에서 낙태권을 옹호하는 후보를 선택해야 한다는 취지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부부도 “낙태권을 성문화하려는 사람들에게 투표하라”는 성명을 내며 가세했고, 엡팅 대표도 “우리는 5월과 6월 거리(시위)에서 만날 것이고, 11월에는 투표함 앞에서 만나자”며 민주당 측에 힘을 실었다.
반면 공화당 전국위원회는 알리토 대법관의 주장과 같이 “낙태 결정은 이제 주 정부로 돌아갈 때”라고 주장하며 보수층의 결집을 호소했다.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도 “활동가들의 압력에 굴복하는 법원은 사법적 정당성을 약화할 뿐”이라며 “대법원의 독립성에 대한 공격”이라고 비판했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