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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LB판 ‘아주라’가 만든 드라마…애런 저지가 슈퍼스타인 이유[이헌재의 B급 야구]

입력 | 2022-05-06 10:14:00


뉴욕 양키스 애런 저지(오른쪽)가 자신의 99번 저지를 입은 아홉 살 소년 데릭에게 사인공을 건넨 듯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토론토=AP 뉴시스

야구를 보면서 울어본 적이 있으신가요? 어느덧 감정이 메말라버린 아재가 됐지만 ‘야구 소년’일 땐 야구를 보면서 눈물을 훔쳤던 적이 꽤 있습니다. 응원했던 고교 팀이 전국대회 결승에서 아쉽게 졌을 땐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돌이켜보면 왜 그랬나 싶기도 하지만 여전히 많이 이들이 야구를 보면서 울고 웃습니다. 누군가에겐 야구가 ‘그깟 공놀이’일지 몰라도 야구가 공놀이 그 이상일 거라 생각하는 분들이 여전히 많습니다.

한국에서 어린이날 주간이었던 이번 주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는 한 소년의 눈물이 잔잔한 감동의 물결을 일으켰습니다. 메이저리그 판 ‘아주라’ 라고 할 수 있는 일이었는데요. MLB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 그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Eqto63A82yE

간단히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4일(한국시간) 캐나다 토론토 로저스센터에서 뉴욕 양키스와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경기였습니다. 양키스의 거포 애런 저지는 0-1로 뒤진 6회초 왼쪽 담장을 훌쩍 넘기는 동점 솔로포를 쏘아 올렸습니다. 저지의 홈런공을 잡은 사람은 토론토 팬이었던 마이크 씨였지요. 공을 주워든 그는 두 팔을 번쩍 들어올리며 환호하려다 저지의 99번 양키스 저지를 입고 있던 한 소년과 눈이 딱 마주칩니다. 그 소년은 눈으로 “그 공을 제게 주세요”라고 말하고 있었지요.

부산 사직구장에서처럼 “아주라~, 아주라~”를 외치는 사람둘은 없었습니다. 마이크 씨는 그 소년의 눈빛을 보자마자 주저 하지 않고 곧바로 저지의 홈런공을 아이에게 건넸습니다. 소년은 너무 기쁜 나머지 울음을 터뜨렸고, 마이크 씨는 소년을 꼭 안아주었지요. 각종 메이저리그 사이트와 야구 기자들의 SNS를 장식한 훈훈한 장면이었습니다.


토론토 아재 마이크 씨(왼쪽)와 양키스 소년 데릭. 토론토=AP 뉴시스

그리고 어린이날인 5월 5일(물론 미국에는 어린이날이라는 게 없습니다). 뒤늦게 소식을 알게 된 저지는 소년을 경기가 열리는 로저스센터로 초대했습니다. 토론토에 살고 있는 이 소년은 양키스 팬인 아버지 때문에 ‘모태 양키스’ 팬이었지요. 아버지는 양키스의 전설적이 유격수 데릭 지터의 이름을 따 소년의 이름도 데릭이라고 지었습니다.

경기 전 타격 훈련을 마친 저지는 양키스 원정팀 더그아웃에서 데릭을 맞이했습니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기념사진을 찍었지요. 준비했던 사인 볼도 건넸습니다. 이 자리에는 소년에게 선뜻 공을 건넸던 마이크 씨도 함께 초대받았습니다. 토론토 외야수 조지 스프링거는 마이크 씨에겐 사인 유니폼을 선물했습니다.

‘아주라’를 실천한 덕분에 야구 아재과 야구 소년은 애런 저지라는 슈퍼스타와 평생 잊을 수 없는 순간을 맞은 것이지요. 저지는 현지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어떤 유니폼을 입고 있는 사람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모두가 야구팬이고, 모두가 야구를 존중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저지에게 사인 볼을 받은 데릭은 또 다시 폭풍 눈물을 흘렸습니다. 불과 이틀 사이 그는 평생 자랑거리인 두 가지 큰 선물을 받은 것이지요.


올해 스프링캠프에서 애런 저지에게 사인을 요청하는 팬들의 모습. AP 뉴시스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저지는 안방인 뉴욕 양키스타디움에서 열리는 토론토와의 경기에 데릭의 가족과 마이크 씨 가족을 다시 한 번 초대하기로 했습니다. 이 모습 역시 각종 매체들을 통해 시청자들과 독자들에게 생생하게 전달되겠지요.

야구는 경기장 안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끊임없는 야구의 위기론 속에서도 메이저리그가 여전히 ‘국민 여가(National Pastime)’의 자리를 유지할 수 있는 원동력이기도 할 것입니다. 야구는 여전히 이렇게 아이 어른을 가리지 않고 꿈과 희망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애런 저지라는 슈퍼스타가 만들어낸 ‘감동 드라마’이지요.


이헌재 기자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