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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살의 전직 기자는 왜 1만2000km를 걸었을까

입력 | 2022-05-06 11:08:00

베르나르 올리비에 ‘나는 걷는다’



‘나는 걷는다’의 저자 베르나르 올리비에가 실크로드 대장정의 마지막 발걸음이 닿은 중국 시안에서 포즈를 취했다. 여기서 4년에 걸친 1만2000km의 도보여행이 막을 내렸다.


‘나는 아직도 머나먼 초원과 얼굴에 쏟아지는 비바람과 느낌이 다른 태양빛 아래 몸을 맡기는 것을 꿈꾼다.’

광활한 자연과 미지의 세계에 몸을 내던지고자 하는 갈망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위 문장을 적은 이는 무엇에든 도전할 준비가 돼 있는 건장한 청춘이 아니다. 직장에서 은퇴하고, 아내와는 사별한 예순 살의 전직 기자 겸 칼럼니스트 베르나르 올리비에가 주인공이다. 30여 년간 프랑스 유수의 신문사와 잡지사에서 일하며 바쁘게 살아온 그는 은퇴 후 “내 나이에 장미나 키우며 살아야 하는데”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하지만 불현듯 떠났던 스페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잊지 못하고, 다시 길 위에 섰다.

저자는 1999년 터키 이스탄불에서 시작해 2002년 중국 시안에 도달하기까지 1만2000㎞를 걸은 1099일의 여정을 담아 세 권의 책 ‘나는 걷는다 1·2·3’(효형출판)을 출간했다. 4년간 네 차례에 나눠 걸었다. 1권은 여행 첫 기간인 1999년 봄에서 여름까지를 다뤘다. 저자는 실크로드를 걸으면서 짐을 도둑맞고, 짐승의 위협을 받았으며, 발의 피부가 떨어져나가고 뱃속이 뒤틀리는 듯한 복통과 싸운다. 이란 수도 테헤란까지 가려 했지만 예상 밖의 변수로 터키 에르주름에서 멈춰야했다. 2권은 터키 에르주룸~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2000년 봄~가을), 3권은 사마르칸트~중국 투루칸(2001년 여름, 가을) 및 투루칸~시안(2002년 봄, 여름)의 여정을 각각 정리했다. 출판사는 출간 20주년을 맞아 개정판을 냈다.

책은 저자가 실크로드 위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자세한 일화로 가득하다. 그가 길을 걷기 전 ‘내 박물관은 길들과 거기에 흔적을 남긴 사람들이고, 마을의 광장이며, 모르는 사람들과 식탁에 마주 앉아 마시는 수프인 것’이라고 밝혔듯, 저자는 실크로드에 살고 있는 소시민의 삶을 관찰하고 그들의 호의에 기꺼이 몸을 맡긴다. 숙소가 보이지 않아 어두컴컴한 골목을 헤매던 그에게 양갈비를 구워 주고 침대를 내어준 이부터, 친구들에게 여정에 대해 이야기해달라며 저자의 손을 끌고 학교로 향한 초등학생까지. 신기하다는 듯 이방인인 그를 관찰하는 눈길도 그저 반갑다. 그는 말한다. ‘단지 존재하는 것만으로 사람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큰 행복인가!’

1만2000㎞를 걷는 과정은 순탄치만은 않다. 분쟁지역에 잠입한 테러리스트로 오해를 받기도 하고, 이슬람 문화권인 터키에서 반바지를 입은 그를 불쾌한 시선으로 바라본 사람들과 마주한다. 카톨릭 신자인 그를 개종시키려는 이슬람 사제도 만난다. 4년간의 고된 걸음은 예순이 넘은 그에게 질병도 안겼다. 탈수증과 전립선염이 겹쳐 배가 부풀어 오르고 소변을 볼 수 없었다. 발톱이 살을 파고들어 발가락 살이 너덜너덜해지는 게 일상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계속 걷는다. 그저 타인을 만나고, 걷기를 반복하는 4년의 시간을 통해 쫓기듯 살아온 30여 년을 뒤로한다. 느림과 침묵을 온전히 누리는 그의 여정은 훌훌 털고 배낭을 멘 채 길을 나서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킨다. 그의 통찰 역시 가슴을 일렁이게 한다. ‘사회가 얽어맨 줄을 끊고, 안락의자와 편한 침대를 외면한다. 행동하고 생각하고 꿈꾸고 걸으므로 살아있는 것이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