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초 스페인 산티아고순례길을 걷다가 눈을 만났다. 갈리시아 지방 해발 1300m의 고원에 있는 ‘산타 마리아 레알 오 세브레이로’ 성당이 있었다. 산의 아랫녘에는 각종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데, 산꼭대기에는 눈이 내렸다.
푹푹 빠지는 눈을 밟고 성당으로 향하는데, 나뭇가지에도 흰 눈이 수북수북 쌓여 있었다. 지난 겨울에 강원도의 산 속에서 나뭇가지에 얼음이 얼어붙은 상고대를 봤지만, 말 그대로 나무에 함박눈이 쌓여 핀 눈꽃은 오랜만에 보았다. 성당의 꼭대기에 매달려 있는 종이 ‘땡땡~’하고 울리기 시작했다. 고즈넉한 산골의 눈쌓인 성당에서 듣는 종소리는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었다.
그런데 담벼락에 심어진 나무에서 새빨간 열매를 발견했다. 뾰족뾰족한 초록색 잎사귀와 빨간색 열매, 그 위에 덮여진 새하얀 눈! 12월25일 크리스마스 카드에 그려져 있는 그림 그대로였다. 그것도 봄에 스페인 산골에서 초록색, 빨간색, 흰색이 선명한 대조를 이루는 모습을 현실에서 마주하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호랑가시나무 잎사귀는 어찌나 뾰족한지 손을 대면 찔릴 정도다. 호랑이가 등이 가려울 때 등을 비빈다고 해서 ‘호랑가시나무’ ‘호랑이 등긁기 나무’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런데 호랑가시나무는 서양에서는 성당이나 교회 앞마당, 국내에서도 외국인 선교사 사택 등에 어김없이 심어져 있는 나무다.
지난해 광주 무등산 자락에 있는 양림동 마을의 ‘호랑가시나무 언덕’에서 호랑가시나무를 처음 만났다. 100여 년 전 이곳을 찾은 우일선(로버트 윌슨) 선교사가 심은 호랑가시나무, 흑호두나무, 은단풍나무 등도 아름드리 거목이 되어 숲을 이루고 있는 곳이다.
이 나무가 성탄트리로 애용된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고난을 받을 때 ‘가시 면류관’의 가시나무가 호랑가시나무였다고 해서 신성시돼왔기 때문이다. 그 후로 잎과 줄기를 둥글게 엮은 것은 가시관을 상징하고, 빨간 열매는 예수가 흘린 성스러운 피, 줄기 껍질의 쓴맛은 고난을 의미한다고 한다. 매년 연말이면 이웃 돕기 상징으로 빨간 열매 3개가 한 송이로 된 ‘사랑의 열매’는 바로 호랑가시나무 열매다.
이 때문에 호랑가시나무의 영어 이름은 성스럽다는 의미의 ‘홀리(Holly)’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할리우드(Hollywood), 할리스 커피(Hollys Coffee) 이름도 호랑가시나무숲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유럽에서는 겨울이 되면 호랑가시나무 잎사귀로 둥글게 화환을 만들어 문 앞에 걸어놓는다. 나쁜 기운으로부터 집을 보호하고, 가정의 평화와 행복을 기원하는 의미의 풍습이다.
세브레이로 성당은 ‘기적의 성배’가 있는 성당으로도 순례자들에게 유명하다. 때는 1300년대의 중세시대. 아랫마을에 사는 한 신자가 눈보라가 몰아치고, 엄청나게 추운 날에 산을 넘고 넘어 성당을 찾아왔다. 그는 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그 악천후를 뚫고 온 것이다. 사제는 이런 날씨에 산꼭대기 성당까지 미사를 보러 올 신자는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농부 한 사람이 찾아온 것이다. 그 신부는 마음 속으로 “한 조각의 빵과 포도주를 먹기 위해 온 사람이구만!”이라고 신자를 폄훼했다고 한다. 그런데 미사를 하러 들어갔더니 성배에 담겨 있던 포도주가 실제 피로 변하고, 성체는 살덩이로 변해 있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제대 오른편에 있는 ‘기적의 성배’에 담긴 설명에는 “믿음이 부족한 사제를 깨우치기 위해 하느님께서 일으키신 기적”이라고 씌여져 있었다.
이 성당에서는 요즘도 산티아고순례길 순례자를 위한 미사가 매일 열린다. 이 성당에는 세계 각국의 언어로 된 성서가 비치돼 있다. 그 중에는 한국어 ‘성경’도 있었고, 한국어로 된 ‘순례자를 위한 축복기도문’도 있었다. 기도문의 마지막 구절이 가슴에 와 닿았다.
“행복하세요./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행복하게 하세요.”
수백km를 걸어야하는 산티아고 순례길에서는 순례자들끼리 서로 물과 음식을 나누고, 짐을 들어주고, 동행을 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도움을 준다. 찬란한 햇빛과 들꽃, 새소리를 들으며 내 안에서 행복함을 느끼는 것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다. ‘혼자만 잘 살면 무슨 재민겨’(전우익 저), ‘당신이 잘 있으면 나도 잘 있습니다.’(정은령 저)라는 책의 제목처럼, 나만 행복하다고 결코 행복해지지 않는 게 현실이다.
순례길에서는 내 자신을 찾은 듯하고, 많은 깨달음을 얻었더라도 현실로 돌아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까맣게 잊혀지기도 한다. 귀국해서 사진을 정리하던 중 세브레이로 성당 벽에 걸려 있던 성프란시스코 수도회의 ‘순례자의 기도’를 번역해서 다시 한 번 읽어본다.
순례자의 기도
동쪽에서 서쪽으로 난 모든 길을 걷고,
산과 계곡을 건너더라도,
만일 내 안의 자유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나는 아무 곳에도 도착하지 못한 것입니다.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가진 사람들과 모든 소유물을 나누고,
길에서 만난 수천명의 순례자들과 친구가 되고,
성인과 왕자와 알베르게 숙소에 함께 지내더라도,
만일 내일 만나게 될 내 이웃을 용서할 마음을 갖지 못한다면,
나는 아무 곳에도 도착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매일 음식과 물을 마시고,
매일 저녁에 지붕 아래서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나의 모든 상처를 치료 받을 수 있더라도,
만일 그 모든 것이 하느님의 사랑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나는 어느 곳에도 도착한 것이 아닙니다.
수많은 역사 유적을 답사하고 최고로 멋진 노을을 감상하고,
모든 언어로 인사하는 법을 배우고,
수많은 샘의 맑은 물을 맛본다 해도,
만일 그토록 아름다운 자연과 평화를 공짜로 얻게 해준
창조주를 느끼지 못했다면,
나는 어느 곳에도 도착한 것이 아닙니다.
만일 오늘부터 더 이상 내 자신의 길을 걷지 않고,
배우고 느낀대로 살지 않는다면,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 속에서 순례길처럼 벗과 동료를 찾아낼 수 없다면,
내 삶의 유일한 절대자인 나자렛 예수를 알아보지 못한다면,
나는 어느 곳에도 도착하지 못한 것입니다. (산티아고의 성 프란치스코 수도회)
글·사진 산티아고 순례길=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