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탐구하는 미술관/이다 지음/400쪽·1만8000원·브라이트
수년 전 이탈리아 피렌체 국립복원연구소(OPD)를 취재할 때 15세기 르네상스 거장 도나텔로의 ‘막달라 마리아’(1455년)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다. 나무 조각상 곳곳을 채색해야 할 정도로 색이 바랬지만, 구도자의 처연한 표정과 몸짓에 순간 숨이 멎는 듯했다. 나무의 물성 안에 500여 년 전 작가의 감성이 생생히 살아 숨쉴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예술가들의 작품을 다룬 이 책을 보며 예전 기억이 떠오른 건 저자가 피렌체에서 미술품 복원을 전공한 미술사학자여서다. 책에는 10년 넘게 유학 생활을 한 그의 경험이 작품 설명과 곁들여져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저자는 이성과 감성의 균형을 추구한 르네상스의 지성이 미술에도 고스란히 반영됐다고 말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도나텔로의 ‘다비드’ 청동상(1440년). 소년 다윗이 거인 골리앗을 쓰러뜨린 구약성경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작품은 서사보다 ‘몸’ 자체에 주목하고 있다는 게 그의 견해다. 다양한 표현 기법을 통해 매끄럽게 빛나는 인체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했다는 것. 이에 비해 다비드의 모자에는 지성을 상징하는 그리스 신 헤르메스를 조각했다. 저자는 “야수적 본능을 상징하는 골리앗을 제압한 뒤 다비드가 짓는 미소는 인간 지성의 발견을 기뻐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복원사 출신답게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1494∼1498년)이 후세 복원 과정에서 오히려 훼손된 사례도 소개했다. 요즘에는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기 위해 언제든 지울 수 있는 수채화로 미술품을 복원한다는 사실은 국내 문화재계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