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 6일 부산 동서대학교 센텀캠퍼스에서 열린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작 ‘춘몽’ 기자회견에서의 배우 강수연 모습. 뉴스1
7일 오후 3시 별세한 배우 강수연 씨(56)가 생전 했던 말이다. 고인은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남은 생도 영화에 오롯이 헌신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노년의 배우로서 연기하는 그의 모습은 끝내 볼 수 없게 됐다. 뇌출혈에 따른 심정지로 5일 쓰러진 그가 쾌유하길 많은 이들이 간절히 염원했지만 그는 끝내 병상에서 일어서지 못했다. 원조 ‘월드 스타’였던 고인이 눈감았다는 소식에 영화계와 팬들은 황망해하고 있다.
그의 유작이 된 ‘정이’를 연출한 연상호 감독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건강에 전혀 문제가 없어 보였다. 정말 밝고 활발했다. 연출부도 얼마나 잘 챙겨줬는지 모른다”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고인과 함께 1980, 90년대 영화계에서 활동한 이장호 감독은 “최근까지도 아주 건강했다”며 “너무나 좋은 배우, 너무나 아까운 배우가 이렇게 가버렸다”라고 말했다.
고인이 걸어온 길은 한국 영화사와 맥을 같이 한다. 고인은 1969년 세 살 때 길거리캐스팅으로 데뷔한 이후 초등학교 때 어린이 드라마 ‘번개돌이’ ‘똘똘이의 모험’에 출연하며 아역 스타가 됐다. 고교 시절인 1982년 영화 ‘깨소금과 옥덜매’ 1983년 드라마 ‘고교생 일기’에 출연하는 등 TV와 스크린을 넘나들며 임예진 이덕화 전영록 등의 ‘얄개 1세’ 배우들에 이어 ‘얄개 2세’를 대표하는 하이틴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2011년 영화 ‘달빛 길어올리기’
1985년 김수형 감독의 ‘W의 비극’, 배창호 감독의 ‘고래사냥2’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성인 역할을 맡으며 한국 최고 배우로의 도약을 예고했다. 배창호 감독은 “아역 시절부터 재능이 특출해 눈여겨보던 배우였는데 성인이 돼서도 그 참신함이 여전하더라. 그래서 내가 직접 캐스팅했다. 발랄하고 매사에 적극적이던 모습이 생생하다”라고 회고했다.
뒤이어 1989년에는 임 감독의 ‘아제 아제 바라 아제’로 모스크바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명실상부한 ‘월드 스타’로 떠올랐다. 한국 최고 여배우 지위도 일찌감치 굳혔다. 당시 모스크바영화제는 칸국제영화제, 베를린국제영화제, 베니스국제영화제와 함께 세계 4대 영화제로 꼽혔다.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조직위원회 집행위원장은 “1997년 인도 남부 지역에 있는 도시 트리반드룸에서 열린 인도영화제에 강수연 씨, 임권택 감독과 함께 참석했는데 현지 주민들이 ‘씨받이를 봤다. 강수연 연기가 정말 좋았다’고 말해 깜짝 놀랐다”라며 “한국영화와 한국배우를 전 세계에 알리는데 그만큼 큰 기여를 한 것”이라고 말했다.
영화 ‘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 ‘감자’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경마장 가는 길’ ‘그대 안의 블루’ 등 1980, 90년대 많은 영화에 출연했다. 특히 1990년대에는 ‘처녀들의 저녁식사’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등 여성의 성적 주체성을 강조하거나 여성이 겪는 차별 문제를 들여다보는 등 여성에 대한 사회적 변화를 작품을 통해 보여줬다.
2012년 영화 ‘주리’
고인은 영화에 대해 “끊임없이 답을 안 주는 사랑 같은 것”이라고 했다. 그는 영화에 온 마음과 힘을 바쳤고 마지막까지 영화를 놓지 않은 진실한 영화인이었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