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코스家, 父子대통령 배출할 듯 54% 개표율서 2위에 더블스코어… 틱톡-유튜브 등 활용 독재 미화 먹혀 두테르테 딸도 부통령 당선 확실시… CNN “친중 행보 더 강화될 것” 전망
독재자 아들과 권위주의적 통치자 딸이 필리핀 대통령궁에 사실상 입성했다. 9일 치러진 필리핀 대통령 선거에서 1986년 ‘피플 파워’ 민주화 운동으로 축출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아들 마르코스 주니어 전 상원의원(65)과 ‘마약과의 전쟁’으로 악명 높은 로드리고 두테르테 현 대통령의 장녀 사라 두테르테 다바오시 시장(44)이 각각 대통령과 부통령 당선이 유력하다고 필리핀 언론이 전했다.
필리핀 선거위원회(Comelec) 비공식 개표 결과에 따르면 개표율 53.5%인 이날 오후 8시 32분(현지 시간) 현재 마르코스 주니어는 약 1750만 표를 얻어 레니 로브레도 현 부통령(약 831만 표)을 920여만 표 앞섰다. 두테르테 시장도 2위보다 3배 이상 많은 1710만 표를 얻었다.
미국 CNN 방송은 마르코스 주니어와 두테르테가 집권하면 현 정부의 친중(親中) 행보가 더 강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봉봉’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마르코스 주니어는 유세 내내 “중국과의 동맹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르코스 주니어의 승리 요인으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동원한 이미지 정치를 꼽는 전문가가 많다. 그는 아버지 마르코스를 ‘정치 천재’라고 부르며 철권통치와 부정부패로 점철된 치세 미화에 주력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그의 선거캠프는 틱톡 유튜브를 활용해 독재에 대한 허위조작 정보를 만들어 역사에 친숙하지 않은 젊은 세대를 공략했다.
아버지 독재자의 계엄령 치하에서 고통받았던 양심수 출신 시민들은 마르코스 주니어가 당선되면 과거 정의 구현이 어려워질 것을 우려한다. 대통령이 마르코스 가문 비리를 조사하는 바른정부위원회(PCGG) 인사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사면위원회에 따르면 마르코스 전 대통령 21년 집권 기간 중 후반 9년의 계엄령하에서 약 7만 명이 ‘국가의 적’으로 체포됐다. 이 중 절반가량이 고문을 당했고 3000명 이상이 숨졌다.
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