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서구 서대신동 시약산의 한 체육공원에 ‘목격자를 찾는다’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지난해 4월 3일 새벽 이곳에 혼자 오른 70대 남성이 누군가 휘두른 흉기에 살해됐다. 경찰은 용의자를 추적 중이지만 1년째 이렇다 할 단서를 찾지 못하고 있다.
“여기를 지날 때면 아직도 간담이 서늘해집니다. 1년 전 꼭두새벽에 발생한 흉측한 사건이 자꾸 생각나서….”
9일 오후 부산 서구 서대신동 시약산(해발 510m) 3부 능선에 조성된 체육공원 앞. 산 아래 마을에 사는 70대 여성은 고추 재배에 쓸 마른 대나무 대여섯 개를 주워 내려가다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현장 곳곳에는 ‘목격자를 찾습니다’, ‘산길, 혼자서는 위험합니다’ 등의 안내문구가 적힌 플래카드가 색이 바랜 채 걸려 있었다. 살인사건 발생 13개월이 지났지만 경찰은 용의자 특정조차 못 하고 있다.
● 13개월째 용의자 특정 못해 미궁
부산경찰청은 사건 초기 70여 명으로 꾸려진 전담팀을 가동해 수사를 벌이다 지금은 프로파일러가 포함된 장기미제수사팀과 서부서 강력팀 등 10명이 사건을 맡고 있다. 그동안 경찰은 CCTV 100여 개와 차량 블랙박스 54개를 분석했고, A 씨 집 근처에 살거나 원한·채무 관계에 있던 1400여 세대를 탐문 조사했다. A 씨의 통화기록을 통해 사건에 연루됐을 가능성이 있는 사람도 추적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용의자의 나이대나 성별 등의 정보가 전혀 안 드러났다.
목격자도 전혀 없는 상황이다. 제보는 단 한건 접수됐으나 이마저도 거짓 신고였다. 경찰 관계자는 “사건 발생일 낮에 비가 내려 증거가 될만한 혈흔 등이 씻겨져 내려간 점도 수사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 중 하나”라고 말했다.
● 부산에서 12년 만에 장기미제 될 가능성도
경찰은 또 ‘계획살인’이 아닌 ‘우발적 범행’일 개연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살해 계획이 있었다면 주방도구로 쓰이는 흉기 등을 준비해 A 씨의 급소를 겨냥했을 가능성이 높지만, 범인은 보통의 범행현장에서 쓰이지 않은 도구로 A 씨의 얼굴 부위를 수십 차례 긋거나 찔렀다. 경찰이 상흔 등을 토대로 추정한 흉기는 길이 7㎝, 넓이 3㎝ 정도의 짧은 도구다.
동의대 최종술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사건이 장기미제로 분류되면 증거나 목격자의 진술을 확보하기 더 어려워진다”며 “한 달 내 해결한다는 각오로 경험 많은 베테랑 형사를 추가 투입하는 등 수사 인력을 확충해 사건을 면밀히 다시 살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화영 기자 r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