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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퍼 “트럼프, 주한미군 완전철수 제안했었다”

입력 | 2022-05-11 03:00:00

前 美국방장관 회고록서 밝혀… 트럼프, 2018년 19만 미국인 한반도 철수 지시
한일 갈등에 트럼프 “韓 안보에 진지하지 않아”
“문재인 정부 임기 내 전작권 전환 필사적”




미국이 2020년 10월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연례안보협의회의(SCM)에서 경북 성주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기지의 주둔 여건이 개선되지 않으면 사드를 철수할 수 있다고 밝힌 것으로 드러났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 시절 국방장관을 지낸 마크 에스퍼 전 장관은 10일(현지 시간) 출간한 회고록 ‘성스러운 맹세(A Sacred Oath)’에서 이같이 밝혔다. 에스퍼 장관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임 당시 주한미군의 완전 철수를 지시했다고도 했다.
“한국, 중국의 궤도로 표류 우려”

에스퍼 전 장관은 “미국과 한국은 북한의 지속적인 위협과 중국의 장기적 전략적 도전에 직면해 있었다”며 “북한에 대한 한미간 견해는 일치했지만 한국이 무역, 경제, 지정학적 중력에 이끌려 중국의 궤도로 표류하고 있는 것 아닌지 걱정했다”고 밝혔다.

그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배치에 대한 중국의 보복을 언급하며 “박근혜 대통령은 (중국의 보복에도) 확고한 태도를 보였다”면서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한국은 점점 더 중국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으로 보였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새롭게 출범한 문재인 정부의 영향이었는지 더 근본적인 변화가 진행 중이었을까”라고 반문하며 “이 때 한국이 미국에 (안보를) 의존하면서 경제파트너인 중국을 편드는 불가능한 일을 시도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고 밝혔다.

에스퍼 전 장관은 이어 2020년 SCM에서 서욱 국방부 장관을 만나 사드 포대의 생활환경 개선을 요구하며 “3년 전 사드 부대 현장을 방문했을 때 인내심을 가져달라고 했고 다음해에도 같은 말을 들었다”며 “이는 동맹국이 상대 동맹국을 대하는 방식이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화상회의로 참석한 마크 밀리 미 합참의장에게 “90일 이내 사드 철수 영향을 평가하고 다른 선택지를 제시해달라”고 지시했다며 “나의 연기는 한국 대표단의 허를 찔렀다”고 말했다. 이후 문재인 정부는 시위대를 강제해산하고 사드기지에 공사 자재를 반입하는 등 사드 기지 환경개선 작업에 들어갔다.
트럼프 북핵 위기에 한반도 미국인 철수 지시했다 번복

에스퍼 전 장관은 북핵 위기가 최고조로 고조됐던 2018년 1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주한미군 가족 전원 철수를 결정했다가 입장을 바꿨다는 사실도 폭로했다. 그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한반도에서 주한미군 가족의 전원 철수를 당일 오후 발표할 예정이라는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그는 “앞서 주한미군사령부로부터 한국의 모든 미국인 철수 계획 등 전쟁 준비 계획에 대해 보고를 받았는데 철수 대상은 19만 명에 육박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모든 미군 가족 철수는 예기치 못한 극적인 조치였기 때문에 많은 이들은 곧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해석할 것”이라며 “한국 경제와 주식시장, 항공은 공황 상태에 빠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에스퍼 전 장관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미국의 철수를 전쟁의 서곡으로 볼 것”이라며 “북한은 서울을 점령하고 평화를 호소할 수도 있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이어 당시 상황을 “모두가 피비린내 나는 오랜 전쟁에 휘말리는 제1차 세계대전의 시작과 같은 것일지 모르지만 위험한 ‘치킨 게임’이었다”며 “하지만 누군가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미국인 철수를 알리는 트위터 글을 올리지 않도록 설득해 위기를 모면했다”고 전했다.

그는 2020년 한미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협상으로 갈등할 당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주한미군 전원 철수를 지시했다가 마이크 폼페이오 전 국무장관의 기지로 지시를 미뤘다는 사실도 소개했다. 당시 트럼프 전 대통령은 한국에 방위비 분담금 500% 인상을 요구한 바 있다.

에스퍼 전 장관은 “트럼프 전 대통령은 ‘한국은 우리를 벗겨먹고 있다’고 믿었다”며 “트럼프 전 대통령이 주한미군 완전 철수를 얘기했을 때 매우 불안했다”고 했다. 이어 “이를 막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글로벌 미군 배치’ 재검토가 진행 중이라는 것을 상기시키며 시간을 버는 것뿐이었다”고 돌아봤다. 그는 “한 번은 폼페이오 전 장관이 끼어들어 ‘대통령님 (주한미군 철수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최우선 과제로 하는 것이 낫겠습니다’라고 말했다”며 “이는 트럼프 전 대통령을 달랠 수 있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맞아 2기 정부’라고 대답했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 임기 중 전작권 전환에 필사적”

에스퍼 전 장관은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문제를 둘러싼 문재인 정부와의 이견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소개했다. 그는 “한국의 국내 정치는 전작권 전환 등 다른 안보분야에도 파급됐다”며 “진보 성향의 문재인 정부는 대통령 임기 중 전작권 전환에 필사적(hell-bent)이었다”고 했다.

그는 “문 대통령과 최소한 2차례 만나 전작권 문제를 논의했다”며 “조건에 기반한 전작권 전환 계획을 유지해야 한다는 미국의 입장을 전달했고 문 대통령은 정중하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임기가 끝나기 전인 2022년 중반까지 (전작건 전환) 시간표를 올렸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의 외교정책은 북한에 대해 부드러운 입장을 취했으며 미국에 대해선 ‘나는 친미지만 한국은 미국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외교를 채택해야 한다’고 말했다”며 “그의 정책과 행동은 분명히 이를 반영하고 있었다”고 했다.

이어 그는 서욱 장관이 2020년 전작권 전환에 대해 새로운 제안을 한 사실을 언급했지만 서 장관의 제안은 책에서 삭제됐다. 에스퍼 전 장관은 출간 전 국가안보상 기밀 유출 검토를 위해 국방부에 원고를 넘겼으며 이 과정에서 일부 내용이 삭제됐다.

에스퍼 전 장관은 또 4세대 F-35 전투기를 5세대 전투기로 교체하는 방안을 추진했으나 북한의 반발을 우려해 난관에 부딪혔다고 밝혔다.

그는 회고록에서 문 대통령과의 만남을 언급하며 청와대와 백악관을 비교하기도 했다. 에스퍼 전 장관은 “청와대는 크고 화려했다”며 “2층으로 통하는 이중 계단에는 밝고 붉은 카펫으로 덮여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문 대통령을 만난 큰 방에는 금색 태피스트리, 바닥은 아름다운 크림색 카펫으로 장식돼 있었고 각 참모들은 약 25피트(7.6m) 간격으로 배치된 의자에서 서로 마주보고 있었다”며 “백악관과 달리 청와대는 조용했다. 백악관과 달리 참모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니지 않았다”고 했다.


“한국 쿼드 가입은 필수적”

회고록에는 2019, 2020년 지소미아(GSOMIA·한일정보교류협정) 파기 논란 당시 한일갈등에 대한 미국의 시각도 자세히 담겼다. 에스퍼 전 장관은 한일 관계에 대해 “문재인 정부는 일본보다 북한과 더 대화하려는 의지를 보였다”며 “이 문제는 2019년 지소미아 문제를 두고 터졌다”고 밝혔다.

그는 “한일간의 싸움으로 북한과 중국은 이익을 얻었다”며 “트럼프 전 대통령은 혐오감으로 고개를 저으며 ‘이 위대한 동맹국’들의 가치를 묻곤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왜 한국은 일본과 싸우는가’라고 물으며 한국이 안보에 진지하지 않다고 말했다”며 “이는 매우 훌륭한 질문이었다”고 평가했다.

에스퍼 전 장관은 2018년 한국과 일본을 방문했을 당시 “랜디 슈라이버 전 국무부 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가 문 대통령을 만나 (지소미아 파기 중단을) 대안적 접근법으로 제시했다”고 했다. 이어 “당시 문 대통령은 아무런 약속을 하지 않았으나 협정 만료 몇 시간 전 조건부로 지소미아 만료를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고 밝혔다.

에스퍼 전 장관은 중국 견제를 위한 한미일 협력 강화를 강조하며 “한국이 ‘쿼드(QUAD)’에 가입하는 것은 필수적”이라고 밝혔다. 쿼드는 중국 견제를 위해 미국과 일본, 호주, 인도가 참여한 안보협력체로 윤석열 대통령은 쿼드 워킹그룹에 참여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그는 “(쿼드 가입은) 중국에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에 대한 올바른 신호를 보낼 것”이라며 “역사를 역사에 맡기고 미래에 집중해야 한다는 점을 한국과 일본에 여러 차례 제기했다”고 했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