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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배극인]취임 만찬 초대받은 총수들

입력 | 2022-05-11 03:00:00


이른바 진보 정권에서 기업들이 더 힘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 반대라고 이야기하는 기업인들도 적지 않다. 오히려 반전과 파격을 보여준 경우도 있다. 출범 초부터 ‘재벌개혁’ 구호를 요란하게 내걸었던 노무현 정권의 경우도 시종일관 ‘반(反)기업’ 정책만 폈던 것은 아니다. 2006년 수도권 규제를 과감히 풀어 경기 파주에 LG디스플레이 공장을 짓게 한 게 대표적 사례 중 하나다. 또 용산 미군기지 이전을 계기로 평택이 반도체 메카로 발돋움하는 기반도 만들었다.

▷외환위기 한복판에 집권한 김대중 정권도 마찬가지였다. 전경련 회장을 맡고 있던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에게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야”라며 대기업 빅딜을 주도하게 했다. 일련의 과정과 결과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지만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바탕으로 외환위기를 헤쳐 나갔다. 또 거품 논란도 만만치 않지만, 정보기술(IT) 강국의 자양분이 된 벤처 붐을 일으킨 것도 그였다.

▷역설적으로 친기업일 것 같은 보수 정권에서 더 힘들었다는 기업인이 많다. 김영삼 정권 때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베이징 방문에서 “기업은 2류, 행정은 3류, 정치는 4류”라고 했다가 정권의 미움을 샀다. 뿌리 깊은 사농공상(士農工商) 풍토에서 ‘어디 감히’라는 괘씸죄까지 얹혀졌다. 기업인 출신인 이명박 대통령은 임기 중반 지지율이 떨어지자 오히려 대기업 때리기에 나서 재계를 어리둥절하게 했다. 박근혜 정권은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에 대기업들을 동원했다가 총수들이 줄줄이 구속되는 사태를 초래했다.

▷문재인 정권은 기업규제 3법 등 반기업 정책을 숱하게 쏟아냈다. 그나마 기업인들의 기를 살린 것은 투자 유치에 목을 맨 미국 대통령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17년 당선 직후 트위터에 ‘생큐 삼성’이라고 쓰면서 국내 재계에 손짓했다. 2019년 방한했을 때는 대기업 총수들을 따로 불러 대미 투자에 감사 인사를 전했다. 이달 20일 방한하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4대 그룹 총수와 만나 미국 내 신규 투자를 요청할 것으로 알려졌다.

▷윤석열 대통령이 어제 취임 만찬에 국내 5대그룹 총수를 초청했다. 대통령 취임 만찬에 총수들을 초청한 것은 처음이다. 민간 주도 경제를 이끌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취임 직후에는 경제단체장들을 만나 핫라인 구축을 약속했다. 재계는 환영하면서도 의구심을 떨치지는 못하는 분위기다. 검찰 출신이 다수 포진한 정권에서, 지지율이 떨어지면 언제든 돌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의 걱정과 달리 윤 정권에서 사농공상 풍토가 바뀐다면 그야말로 반전과 파격으로 기록될 것이다.

배극인 논설위원 bae215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