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전 대통령이 10일 양산 평산마을에 도착해 지지자들에게 인사말을 하고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측 제공
퇴임 후 ‘잊힌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바람을 여러 차례 드러내왔던 만큼 문 전 대통령은 이날부터 ‘유유자적한 방향’으로의 삶을 추구해나갈 것으로 보인다.
전날 양산 사저로 가는 길을 환송해주는 지지자들을 향해 문 전 대통령은 ‘해방’ 그리고 ‘자유’와 같은 단어들을 거듭해서 꺼내놓은 바 있다. 5년 내내 어깨에 짊어졌던 ‘국정운영의 부담감’에서 벗어났다는 홀가분함을 드러낸 셈이다.
일련의 발언들은 문 전 대통령의 친구이면서 정치적 동지였던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8년 2월 퇴임 당시 열차 안 기자간담회에서 “홀가분하다. 우선 책임 없는 생활의 여유를 좀 즐기고 싶다”고 언급한 것과 닮아있다.
노 전 대통령은 이때 경남 김해 봉하마을 사저 앞에서 “야, 기분 좋다”고 외치며 대통령 직무에서 벗어난 후련함을 나타내기도 했었다.
문 전 대통령은 이날(10일) 서울역에서 지지자들을 만나 “저는 해방됐다”, “저는 자유인이 됐다”고 말했다.
이어 KTX 특별동차를 타고 도착한 울산(통도사)역에서도 문 전 대통령은 ‘해방’, ‘자유인’이라는 단어를 언급하며 “새롭게 시작할 또 다른 삶이 너무나 기대가 된다”고 했다.
문 전 대통령은 이내 평산마을에 도착해서도 “이제 평산마을 주민들과 함께 농사도 짓고, 막걸리 잔도 한잔 나누고, 경로당도 방문하고, 그러면서 잘 어울리면서 살아보겠다”고 했다. 이때도 문 전 대통령은 ‘완전한 해방’, ‘자유인’이라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다만 문 전 대통령이 퇴임 때까지 ‘40% 이상의 지지율’을 기록하며 존재감을 보인 만큼 본인의 바람처럼 사람들의 기억에서 완전히 잊히긴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당장 굵직한 일정들이 있기도 하다. 문 전 대통령은 윤석열 대통령과의 21일 한미정상회담을 위해 방한(訪韓)하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만남을 가질 예정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10일 KTX 울산 통도사역에 도착해 환영 나온 시민들에게 인사말을 하고 있다. 문 전 대통령측 제공
매 정권마다 진행돼 왔던 전(前) 정권에 대한 수사가 이번에도 반복돼 문 전 대통령을 정면으로 겨냥한다면 그와 관련해 목소리를 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이렇게 본다면 문 전 대통령을 양산에서 보좌하는 3명이 메시지에 특화된 인사들로 구성됐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오종식 전 청와대 기획비서관은 문 전 대통령의 수석·보좌관회의 원고 등을 챙겨온 인물이다. 신혜현 전 부대변인은 부대변인으로서 문 전 대통령 퇴임 전까지 청와대 메시지를 관리해왔다. 특히 신 전 부대변인은 문 전 대통령이 19대 국회의원일 당시 비서관을 지내는 등 문 전 대통령과 오랜 인연을 갖고 있다.
여기에 박성우 전 연설비서관실 행정관이 ‘양산 보좌진’으로 발탁됐다.
문 전 대통령은 그럼에도 기본적으론 ‘정치와의 거리두기’에 힘을 쏟을 것으로 보인다. 탁현민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은 전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문 전 대통령이 노 전 대통령처럼 사저로 찾아오는 국민들을 공개적으로 만나지 않겠다고 했다면서 “(우연히) 만났을 때 반갑게 인사하고 원하시면 사진도 찍고 그렇게 살고 싶다고 하시더라”고 말했다.
앞서 문 전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청와대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도 “과거 노 대통령은 하루에 한 번씩은 시골까지 찾아온 분들이 고마워서 그분들과 인사하는 그런 시간을 가졌었는데, 저는 그렇게는 안 할 생각”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는 퇴임 후에도 토론 사이트 ‘민주주의 2.0’을 만드는 등 적극 지지자 및 국민과의 소통에 나섰던 노 전 대통령 행보와는 차이가 있다.
노 전 대통령은 퇴임날에도 경남 밀양역에 운집한 시민들에게 “정치인 노무현의 종자도 길게 보면 좋다. 씨를 말리지 말고 계속 사랑해 달라”고 하거나 봉하마을에서 열린 행사에서 “노무현과에 속하는 정치인이 하나 있다”며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을 연단 위에 올려 소개하기도 했다.
이와 달리 문 전 대통령은 서울역, 울산역을 거쳐 평산마을에 도착해서도 정치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언급은 최대한 삼가는 모습을 보였다.
문 전 대통령은 사전에 참모진을 향해 ‘사저까지 발걸음을 하는 것을 가능한 한 자제해달라’는 뜻을 표한 것으로도 전해진다.
한편 문 전 대통령은 전날부터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과 ‘대통령 등의 경호에 관한 법률’을 통해 전임 대통령으로서의 예우를 받게 된다.
이에 따르면 문 전 대통령은 비서관 3명과 운전기사 1명을 둘 수 있으며, 앞서 언급된 3명 외 운전기사로는 문 전 대통령이 2012년 국회의원에 당선된 뒤부터 대통령 재임 시 ‘1호차’까지 몰아온 최성준씨가 낙점됐다.
아울러 전직 대통령은 임기 때 보수연액의 95% 수준의 연금을 받게 되는데, 문 전 대통령은 이에 따라 매달 1400만원가량의 연금을 받을 예정이다. 문 전 대통령은 현존하는 전직 대통령 중에선 유일한 연금 수령자다.
교통에 대한 지원 또한 가능한 가운데 문 전 대통령은 퇴임 이후 48개월 동안 제네시스 G80 전기차 2022년형을 지원받는다. 퇴임한 대통령이 전기차를 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여기에 특이사항이 없다면 향후 10년간 대통령 경호처의 경호도 받는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