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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참모의 회고록[횡설수설/장택동]

입력 | 2022-05-12 03:00:00


마크 에스퍼 전 미국 국방장관은 “예스퍼(Yes와 Esper의 합성어)”라고 불릴 정도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충직했다. 하지만 인종차별 항의 시위 당시 연방군을 투입하려 했던 트럼프에 맞서면서 미운털이 박혔고, 결국 옷을 벗었다. 그는 최근 출간한 회고록 ‘성스러운 맹세’에서 트럼프에 대해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존재’ ‘분노의 포로’라고 혹평했다. 퇴임 이후 회고록을 통해 트럼프의 등에 비수를 꽂은 전직 참모 대열에 합류한 것이다.

▷에스퍼의 회고록에 따르면 한미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진행되던 2020년 트럼프는 참모들에게 여러 차례 주한미군 철수 필요성을 언급했다. 북핵 위기가 고조됐던 2018년에는 주한미군 가족 전원 철수를 결정했다가 막판에 번복했다. 트럼프는 멕시코의 마약 카르텔을 미사일로 공격하는 방안도 진지하게 검토했다. 에스퍼는 “군사력 사용에 대한 트럼프의 생각은 시계추처럼 오락가락했다”고 썼다. 다른 국가의 안보를 뒤흔들 사안을 이처럼 가볍게 여기는 미국 대통령이 존재했다는 사실에 새삼 오싹해진다.

▷트럼프에게 가장 골치 아픈 회고록을 쓴 사람은 한때 ‘트럼프의 책사’로 불렸던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었다. 그는 트럼프가 2019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 “‘내가 반드시 승리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간청했다”고 썼다. 트럼프의 겉과 속이 다르다는 얘기다. 또 트럼프는 영국이 핵보유국이라는 사실을 모를 정도로 무식했다는 사실 등도 전했다. 훗날 트럼프는 “코로나가 볼턴을 데려가 버렸으면 좋겠다”고 말했을 정도로 분노했다고 한다.

▷이들 외에도 스테퍼니 그리셤 전 백악관 대변인, 클리프 심스 전 백악관 보좌관, 오마로사 매니골트 뉴먼 전 백악관 대외협력국장, 제임스 코미 전 연방수사국(FBI) 국장 등이 줄줄이 회고록을 냈다. 트럼프의 경박한 성품, 사람을 경시하는 태도가 담겨 있다. 그리셤은 트럼프가 자신의 남자친구를 만난 자리에서 “그리셤과의 잠자리는 어떤가”라고 물은 적이 있다고 폭로했다. 트럼프가 대통령 전용 태닝 침대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직원을 해고한 적도 있다고 뉴먼은 전했다.

▷트럼프는 대통령으로 재직하는 4년 동안 장관을 14명 바꿨고, 백악관 핵심 참모의 92%를 교체했다. 첫 임기에 장관을 3명만 바꾼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등과 비교된다. 충성심이 의심되는 참모는 가차 없이 경질하는 트럼프의 인사 스타일이 반영된 결과다. 코미 전 국장은 회고록에 “트럼프에게 충성을 거부하자 해임됐다”고 쓰기도 했다. 하지만 사람을 가볍게 여기는 지도자를 끝까지 따를 참모는 찾기 어렵다는 사실을 트럼프가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