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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 하지 않는 것에 집중”…일개 사업부서 글로벌 기업 키워낸 구자학 회장

입력 | 2022-05-12 11:02:00


고(故) 구자학 아워홈 회장은 생전 ‘최초’라는 수식어가 항상 따라오는 우리나라 산업화 역사의 산 증인이었다.

고인은 한창 산업화가 진행되던 당시 ‘기업은 돈을 벌어 나라를, 국민을 부강하게 해야한다’는 사업보국(事業報國) 정신으로 산업 불모지를 개척했다. 1960년 한일은행을 시작으로 호텔신라, 제일제당, 중앙개발, 럭키(현 LG화학), 금성사(현 LG전자), 금성일렉트론(현 SK하이닉스), LG건설(현 GS건설) 등 산업 분야를 막론하고 뛰었다.

고인은 “남이 하지 않는 것, 남이 못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고 줄곧 강조했다. ‘최초’라는 수식어가 항상 붙는 것도 고인의 이러한 일념 때문이다. 럭키는 1981년 페리오 치약을 개발했다. 당시에 없던 잇몸질환을 예방하는 치약으로 ‘국민치약’이라는 수식이 붙었다. 1983년 국내 최초로 플라스틱 PBT를 만들었으며, 1985년에는 국내 화장품 브랜드 ‘드봉’을 처음으로 해외에 수출했다. 1989년 금성일렉트론에서는 세계 최초로 램버스 D램 반도체를 개발했고, 1995년 LG엔지니어링에서는 국내 업계 최초로 일본 플랜트 사업을 수주했다.


LG에서 화학, 전자, 반도체, 건설, 화장품 등 핵심사업의 기반을 다진 고인은 2000년 LG유통(현 GS리테일) FS사업부(푸드서비스 사업부)로부터 분리 독립한 아워홈의 회장으로 취임해 20여년간 이끌었다.

역량에 비해 너무 작은 규모의 사업이라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있었지만, 고인은 “국민 생활과 가장 밀접한 먹거리로 사업을 영위하는 식품기업은 막대한 사회적 영향력과 책임감을 동시에 짊어져야 한다”는 철학을 바탕으로 아워홈을 해외에서도 주목하는 종합식품기업으로 키워냈다. 단체급식사업과 식재유통사업으로 시작한 아워홈의 사업 포트폴리오는 현재 외식사업, 기내식 사업, 호텔운영업까지 영역을 확장했다. 매출도 2000년 2125억 원에서 지난해 1조7408억 원으로 8배 넘게 성장했다.


1980년 럭키 대표이사 재직 당시부터 모든 공장을 찾았던 고인은 아워홈 회장으로 지내면서도 직접 현장을 찾아 맛과 서비스, 제조, 물류 등 과정에 들여다봤다. 특히 고인은 단체급식사업도 첨단산업분야에 못지않은 R&D 인프라가 필요하다고 판단, 단체급식업계 최초로 2000년 식품연구원을 설립했다. 아워홈 식품연구원은 지금까지 1만5000여 건에 달하는 레시피를 개발하였으며, 업계 최초 노로바이러스 조사기관, 축산물위생검사기관, 농산물안전성검사기관 등 공인시험기관으로서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또한 고인은 미래 식음 서비스 산업에서 생산과 물류시스템이 핵심 역량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 결과 현재 아워홈은 업계 최다 생산시설(9개)과 물류센터(14개)를 운영하며, 신선물류 시스템을 누구보다 빠르게 구축할 수 있었다. 2016년에는 업계 최초로 자동화 식자재 분류 기능을 갖춘 동서울물류센터를 오픈했다.

아워홈에 따르면, 고인은 와병에 들기 전 경영회의에서 아워홈이 성장할 수 있도록 함께 이끌어 준 임직원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그는 “요새 길에서 사람들 보면 정말 크다. 얼핏 보면 서양사람 같다. 좋은 음식 잘 먹고 건강해서 그렇다. 나름 아워홈이 공헌했다고 생각하고 뿌듯하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은퇴하면 경기도 양평에 작은 식당 하나 차리는 게 꿈이었는데, 이렇게 커져 버렸다. 그동안 같이 고생한 우리 직원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라고 덧붙였다.윤우열 동아닷컴 기자 cloudancer@donga.com